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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산불로 고운사 전소
역대 최악의 산불로 25일 오후, 의성 고운사가 전소했다. 다행히 보물로 지정된 성보동산문화유산은 대피 조치해 보존했지만,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을 비롯해 전각이 화마에 대부분 잿더미가 됐다. 천년 고찰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인터뷰 하는 스님이 부덕의 소치로 절을 지키지 못했다며 눈물 흘리는 영상을 보니 비통한 심정이 든다. 예전에 벗들과 조계종 25개 본사를 탐방했다. 2017년 12월 1일 고운사를 다녀온 기억이 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때 찍은 사진을 찾아 화재 현장을 비교해 고운사를 그려본다. (2025.3.26.)* 화재 현장 사진은 박○○ 작가 제공.
2025.03.27 -
경주 백석마을의 산수유 군락지
산수유 군락지가 있는 경주 건천읍 화천3리 백석마을을 다녀왔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나는 지명이 애매해 '백석길 16'으로 맞추었다. 마을 도로의 길폭이 좁아 교행이 안 되므로 산수유 구경을 할 겸 마을 입구에 주차했다. 마을 입구부터 곳곳에 산수유가 나타나 눈맛이 좋았다. 마을이 조용하고 정겹다. 당산나무와 고목도 더러 있어 산수유와 더불어 풍경이 예뻤다. 옷을 입지 않은 앙상한 고목이 마치 추상화 같았다. 따스한 봄볕을 즐기면서 골목길을 기웃거리니 폐가가 된 빈집도 보였다. 산수유는 좋은 집, 못난 집을 가리지 않고 미모를 뽐내느라 살랑살랑 가지를 흔들어댔다.마을 어귀에서 도랑을 따라 마을 끝까지 600~700미터를 걷다 보니 새지 저수지(섬바위지)가 나왔다. 파란 물이 그득해 보기만 해도 풍요롭다.거기..
2025.03.26 -
송림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월초에 벗들과 칠곡 송림사에 갔다가 문이 열린 삼전불전을 들여다봤다. 불상이 많아 그러려니 생각했더니, 국가유산청 앱을 보니 불상이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갤러리에서 다시 사진을 찾아봤다. 송림사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은 5가지였다. 대웅전과 오층전탑,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 사리장엄구 등이다. 이 중에 오층전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삼천불전에 봉안돼 있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 지장보살, 오른쪽에는 관음보살을 안치했다. 삼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작은 삼천불상(像)을 배치했다. 삼천불은 판에 박은 듯 같은 모양에 지장, 관음보살이 반반이었다. 전각의 현판은 특이하게 정면인 동쪽에 삼천..
2025.03.25 -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 보물* 국가유산청 해설(요약)해인사의 원당암 안에 있는 다층 석탑은 탑신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으로,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1단으로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
2025.03.24 -
합천 해인사 홍하문
* 합천 해인사 홍하문 - 보물* 국가유산청 해설(요약)「합천 해인사 홍하문」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457년(세조 3)에 중수 이래 지금까지 다섯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세조의 지원 아래 해인사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전면에는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 현판과 내부 중앙에 ‘홍하문(紅霞門)’ 현판이 걸려있으며, 배면에는 ‘해동제일도량(海東第一道場)’ 현판이 걸려있다. 「합천 해인사 홍하문」은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 평방(기둥 위에 가로로 놓여 지붕을 받치는 부재)에 6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를 올린 다포식 공포 구조로 서까래와 부연이 있는 겹처마 지붕이다. 기둥은 주기둥 옆에 부재를 X자형으로 보강하여 지붕을 지지하는 형태로 구성..
2025.03.23 -
맛집 고향면옥을 다녀와
한 열흘 전, (대구) 칠곡에 놀러 갔다가 친구들과 에서 점심 먹었다. 갈비탕이 시원해 먹을 만했다. 며칠 전에도 우연히 지인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때라 양념 돼지고기(명품왕갈비)를 주문해 반주를 곁들여 식사했다.셀프 코너가 특별했다. 상치, 깻잎, 배춧속, 케일 등 친숙한 채소와 당귀, 치커리 등 향을 지닌 이름을 모르는 다양한 쌈 채소가 있었다. 어떤 채소는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유리문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손님들이 냉장고에 든 채소는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집어 가는데, 종업원이 일일이 알려주었다. 우리도 듣지 않았으면 좋아하는 당귀나 치커리를 맛보지 못할 뻔했다. 그뿐만 아니라 양념 고기는 석쇠에 잘 달라붙어 탄다. 석쇠에 까만 재가 묻기 전에 재빨리 교체해 주었다. 덕분에 고기를 추가 ..
2025.03.22 -
해인사 홍제암과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
* 합천 해인사 홍제암 - 보물* 국가유산청 해설(요약)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법당과 생활공간의 기능을 겸한 인법당(因法堂) 형식의 건물 1동으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 인법당과는 달리 사명대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기능의 공간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기본 평면은 工 자형으로 가운데 법당을 중심으로 조사전, 영각, 홍각, 조실, 시자실 등이 있으며, 각각의 공간은 툇마루를 통해 모두 연결되고 있다.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홍각과 지장전은 돌출된 누각형으로 만들고, 법당 및 다른 공간은 단층의 구조로 만드는 재미있는 공간 배치를 ..
2025.03.21 -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生家址) - 경남도 기념물* 현지 안내판(요약)사명대사 생가지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크게 물리친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태어난 곳이다. 사명대사는 부모가 죽자 열다섯에 직지사에서 출가하였으며 묘향산 보현사에서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병을 모은 뒤 평안도 순안으로 가서 서산대사와 합세해 외적과 싸웠다. 평양성 탈환 전투 등에서도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왜군 진영에 들어가 휴전 협상을 벌이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인 1604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오는 등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사명대사는 모든 공직을 버리고 묘향산으로 돌아갔..
2025.03.20 -
밀양 표충비와 무안리 향나무
* 밀양 표충비 - 경남도 유형문화유산* 소재지: 밀양시 동부동안길 4(무안길)* 국가유산청 해설(요약)비는 돌담이 둘린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린다.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았다.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 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조선 영조 18년(1742)에 세운 비로, 이의현이 비문을 ..
2025.03.19 -
양산 통도사 사명암
백수는 시간을 보내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방랑 나들이가 잦다. 자유롭긴 한데 한편으로 서글픈 감이 없지 않다. 같은 나들이라도 목표를 정해 다니면 심신이 조금 가벼워진다. 오늘은 사명대사(1544~1610)와 관련 있는 세 곳(통도사 사명암 > 표충비각 > 사명대사 생가터)을 정해, 이른 봄바람을 맞고 왔다. 살랑이는 춘풍 따라 몇 곳을 더 들렀지만 기분 좋은 덤이었다. 통도사 산문을 통과하려면 주차비가 4,000원이다. 좀 비싸다는 기분이 든다. 서운암에 먼저 들렀다가 사명암(泗溟庵)*으로 갔다. 사명암은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했다. 그런 인연으로 이기, 신백 두 스님이 1573년(선조 6) 암자를 처음 지을 때, 대사의 자취를 흠모해 작명한 명칭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보니 빼어난 전각..
202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