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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가는 길의 다모아식당
점심 먹으려고 지인 넷이 만났다. 네 명은 놀러 다니기 딱 좋은 인원이다. 택시 한 대에 모두 탈 수 있으며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이지만, 점심 내기 고스톱도 가능하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네 명으로 잘 어울린다. A가 청국장집을 소개하겠다면서 차를 몰았다. 4차 순환선을 타고 도착한 곳은 파계 교차로의 . 주차장이 없는 듯 도롯가에 자동차가 일렬로 주차돼 있었다. 빨간 간판의 '돌솥밥 청국장' 여섯 글자가 선명했다. 멀리서 봐도 눈에 잘 띄겠다. 안으로 들어가니 점심 대목이 지났는데도 빈 테이블이 몇 개밖에 없었다. 홀을 살펴보니 4인용 테이블이 열세 개, 2인용이 두 개이니 손님이 다 차면 쉰여섯 명이다. 정오 시간대에는 대기해야 할 것 같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고 청국장 네 개, 미주구리회 小를 ..
2024.03.25 -
집에서 도다리쑥국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에는 거뜬하게 이겨냈는데 이제 와 코가 막히고 목이 따갑다. 꽃 피는 봄날에 감기에 걸리다니 어처구니없다. 주말이라 감기로 꼼짝하지 않았더니 집사람이 점심 먹고 나자 쑥 캐러 가자고 한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 가까운 영남대학 수변공원인 삼천지 둑으로 갔다. 기온이 올라갔고 하늘은 파랗다. 둑에는 개나리가 만발하고 햇볕이 더없이 따스했지만, 캠퍼스나 둑방 길에 두런거리는 인적이 없으니 부질없어 보였다. 지난겨울 피었다 진 갈대와 시든 연꽃 줄기가 삼천지의 반을 차지했고 알 수 없는 종류의 울음소리가 끙, 끙하며 들려왔다. 자잘한 쑥들이 땅바닥에 오종종 붙어있었다. 키가 작고 돌이 많아 캐려면 수고롭겠다. 쑥 앞에 주저앉았다. 준비해 간 과도를 쥐고 쑥을..
2024.03.24 -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파계 교차로에서 점심 먹고 머지않은 용진마을에 위치한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니 7km 거리다. 주차장이 별도 없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 생가 입구 왼쪽에는 안내판이, 오른쪽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문구와 88 올림픽 오륜기 로고가 새겨진 기념비가 맞아준다. 마당에 들어서니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 동상, 작은 화단에 업적비가 서 있다. 가옥은 평범한 시골집 그대로 작고 아담했다. 동상은 실물 크기이고 업적비는 근래에 세운 것으로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이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살았다. 2010년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종친은 집터와 생가를 대구시에 기부채납했다. 탐방객이 몇 사람 없어 둘러보기 편했다. 방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 ..
2024.03.23 -
대현 식당의 옻닭을 먹으며
지인과 점심 먹으려고 옻닭집으로 유명한 에 갔다. 이 집의 옻닭을 먹으러 다닌 지도 삼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오랜만에 찾아간 식당은 외형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있다면 주변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상전벽해가 됐고, 식당도 재개발 지역에 포함돼 이전해야 할 처지라는 것뿐이었다. 사장 아들이 도로 앞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도 중년이 훌쩍 지났다. 돈을 엄청나게 벌었을 텐데 복장이 검소했고 'ㄱ'자 한옥인 식당은 헌 집이 됐다. 마당에 들어서니 큼직한 액자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부터 부엌 바깥에 걸렸는데 빛이 바래고 낡았다. 하나는 시혜종덕(施惠種德), 다른 하나는 수여산 복수해(壽如山 福隨海)다. 전자는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라는 채근담에서 따온 글귀*이고, 후자는 산처럼 장수하고 ..
2024.03.21 -
홍탁과 홍어삼합
지인들의 단골집 이 도시철도 2호선 신매역 부근으로 이전 개업했다. 이전하기 전부터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 사장님이 친절해 산행 뒤풀이나 정다운 모임을 할 때 즐겨 찾았다. 주로 돼지 수육과 소주로 목을 축이고 잔치국수로 마무리했지만, 가끔 기분을 북돋울 때는 홍탁이나 홍어삼합으로 분위기를 잡기도 했다. 오늘은 산행 중에 일진청풍을 타고 날아든 이전 개업 소식에 행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찾아갔다. 사장님이 활짝 웃으시며 일행을 맞아준다. 개업은 얼마 전 하셨나 보다. 홀이 넓지 않아도 깨끔했다. 미리 연락해 둔 터라 테이블에 밑반찬이 정갈스럽게 비치돼 있었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 홍어와 돼지 수육을 담은 접시를 가져와 테이블 가운데의 빈자리에 놓았다. 쿰쿰한 냄새가 풍겼다. 일행 중에 홍어를 즐기지 않는 ..
2024.03.19 -
3월 정기 산행을 다녀와서
등산 동호회에서 지난달 갑진년 시산제를 모셨다. 매월 한 번 산행하던 요일을 올해부터 토요일에서 평일로 변경했는데 하필 취업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뿐 아니라 몇 사람이 더 불참해 이달부터 다시 토요 산행으로 환원했다. 회원들이 함께 대구 둘레길 제15코스 용지팔현길을 걸었다. 여름 같은 봄날이었다. 난이도가 쉬운 코스지만 산속으로 들어가니 심산과 다름없이 적막공산이었다. 간간이 새소리가 들려오고 군데군데 진달래가 난만히 피어난 등산로의 고요한 정취는 심신을 편안케 했다. 다만 계류가 보이지 않아 봄의 교향곡인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어 살짝 아쉬웠다. 등산로가 갈래갈래 갈라졌고, 체육시설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도시와 인접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진지하게 산행하려고 회원 모두 ..
2024.03.17 -
별스러운 비단잉어
얼마 전 통도사의 작은 연못 구룡지(九龍池)에서 별스러운 비단잉어 두 마리를 관찰했다. 한 마리는 죽은 척 둥둥 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형태를 바로 잡고 팔팔하게 유영했다. 물고기가 죽어 뒤집혀 있는 것을 보고 주워내야 할 텐데 고민하던 내가 우스꽝스러웠다. 또 한 마리는 연못에서 가장 큰 녀석이었는데 등과 꼬리지느러미가 물어뜯겼고 몸체에 상처가 나 있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스님 면벽하듯 벽만 바라본 채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안 지켜보고 섰는데 별꼴이었다. 전자는 죽은 척하여 중생을 놀리고 후자는 고찰의 연못이 아니랄까 봐 스님 흉내를 내고 있다. 연못이 겉보기에 평화롭게 보이지만, 남모르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기이했다. 사람살이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24.03.16 -
방천시장 족발 맛집
방천시장 옆 신천대로 400m 둑 골목길은 대구 출생, 낭만 가객 故 김광석을 그리는 '김광석 길'이다. 골목에는 그의 노래를 바탕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고 스파커를 통해 대표곡들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주변에는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섰고, 쇠퇴 일로에 있던 방천 시장도 사람들 발길이 늘면서 활성화됐다. 친구들과 김광석 길을 둘러보고 맛집으로 소문난 에 갔다. 손님이 얼마나 많길래 홀이 큼지막한데도 점포가 4개나 됐다. 이른 시간임에도 홀마다 손님이 듬성듬성 있었다. 그중의 한 곳을 들어갔다. 주방이 꽤 컸고 종업원도 빠릿빠릿한 젊은이들이었다. 순하고 매운 족발이 반반씩 나오는 '반반쟁반 세트'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홀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놀라웠다, 족발집이…. 검붉은 색깔의 먹음직스러운 ..
2024.03.15 -
구미 문수사에 다녀오다
모처럼 친구들과 부부 동반 나들이했다. 승용차 여섯 대에 나누어 타고 구미시 도개면 소재지에서 모여 점심 먹고 인근의 문수사(文殊寺)를 갔다. 문수사라는 절은 전국의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꽃이 만발하듯 산재해 있는 문수 사명(寺名)은 문수보살 신앙에서 비롯됐다. 불교의 문수보살은 복덕과 반야 지혜*를 상징하며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로 등장한다. 643년 신라의 자장율사가 문수 신앙을 정착했다. 구미(도개) 문수사는 오십 년 전 1972년 건립된 극락보전, 지장전, 산신각, 요사체, 오 층 석탑, 인근 궁기동에서 발굴된 불상(2기 전시)과 자연 석굴 법당인 사자암 등이 있다. 사자암은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 때부터 납석사(納石寺)로 불리다가 1865년(조선 고종 2년) 폐사 됐다. 수년 후..
2024.03.13 -
사랑하는지 알려나 몰라
정오를 조금 넘겨 ○○초등학교에 갔다. 교문 앞에 울멍줄멍 모여든 학부모들 뒤에 섰다. 아이들이 한 반 빠져나가면 다음 반이 나오곤 한다.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떠나자 제일 앞자리에 서게 됐다. 선생님이 병아리 한 무리를 데리고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멀리서 봐도 사랑하는 병아리가 보였다. 손을 흔들었다. 저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선생님과 하교 인사가 끝나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사랑이 봄바람을 타고 달려왔다. 나는 이만수 포수처럼 쪼그려 앉아 사랑을 받았다. 스트라이크! 야구 장갑으로 공을 잡듯 아이를 꼭 껴안고 일어섰다. 손을 잡고 걸었다. 따뜻했다. 급식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고 자랑했다. 밥을 먹여서 하교시키나 보다. 먹고 싶은 것을 사주려고 했는데…. 조그만 아이 등에 커다란 가방이 버겁게 ..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