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4. 09:35ㆍ여행의 추억

*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 보물
* 국가유산청 해설(요약)
해인사의 원당암 안에 있는 다층 석탑은 탑신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으로,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
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1단으로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낮게 있고, 그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만이 높직하게 남아 있다. 청석탑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지만 이 석탑은 신라 말에 만들어져 청석탑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석등은 탑의 옆에 있으며, 탑과 거의 동일한 시대의 작품이다. 땅과 맞닿은 6각형의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현재는 지붕돌 밑의 불을 밝히던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남아 있지 않다. 중간받침돌은 가늘고 긴 편으로 아래위에 상(上)·하(下)의 글자가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6각형으로 윗면은 편평하며, 머리장식은 원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을 뿐이다.

* 탐방 노트: 해인사에서는 원당암을 '해인사 1번지'라고 한다. 해인사보다 한발 먼저 지었다는 의미다. 802년 해인사 창건 당시 기초 작업장으로 봉서사(鳳棲寺)를 지어, 애장왕이 머물면서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를 돌봤다. 그곳이 오늘의 원당암이다. 진성여왕 때 왕실의 원찰(願刹)이 되고부터 원당암이라 부른다.
해인총림 방장과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역임한 혜암스님(1920~2001)이 머물 때 재가불자 참선도량(달마선원)과 만년 위폐를 봉안할 수 있는 원당(願堂)을 만들었다. 이에 불자들의 호응으로 암자의 위상이 날로 변모해 나가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보광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다층석탑 및 석등'을 보러 갔다. 법당 앞에 서 있는 다층석탑은 일반 석탑과 모양이 매우 달랐다. 마치 기왓장을 포개 놓은 듯 독특했다. 몸돌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았다. 석등도 날씬해 일반 석등과 달랐다. 화사석 등 부재가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탑과 석등이 9세기 후반 진성여왕 대에 조성한 것이고, 왕실 원당이 되고 나서 여왕의 시각에 맞도록 미(美)를 강조한 것은 아닐까. 법당의 삼존불은 불단에 없었다. 개금불사 중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려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였다.
재미 삼아 시작한 국가유산 탐방이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흥미가 새롭고, 만든 이의 성심성의를 읽을 수 있어 감동한다. 하찮은 일에도 성심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20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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