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삼층석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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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낙산리 삼층석탑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에 갔다가 이 탑에 얽힌 오누이 설화가 담긴 낙산리 삼층석탑(보물)까지 봤다. 서로 닮은 두 탑은 탑에 감실로 불리는 부처님을 봉안하는 작은 방이 만들어져 있고, 지붕돌의 층계 등으로 전탑을 모방했다고 한다. 도리사 석탑(보물)도 벽돌탑이니 선산을 대표하는 탑 세 개가 모두 모전탑이다. 대구국립박물관의 상설 전시 국보인 불상과 보살상 3점도 선산에서 출토된 것임을 감안하면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지역으로서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2025.3.9.)*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보물)* 현지 안내판구미 낙산리 삼층석탑은 일선교 사거리에서 해평 쪽으로 약 3km 떨어진 동남쪽 논 가운데 서 있으며 죽장리 오충석탑과 성격이 비슷한 앙식의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으로 높이는 7.2m다...
2025.03.11 -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 석탑
* 慶州 南山 昌林寺址 三層石塔*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창림사지는 '창림'이라고 적힌 기와가 발견되면서 그 이름이 확인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은 신라 최초의 왕궁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절터는 동쪽이 서쪽보다 높은 지형인데 동편의 가장 높은 곳에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은 2층으로 된 바닥돌에 3층의 몸돌을 올렸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76년 복원하였는데 이때 없어진 부분은 새것으로 채워 넣었다. 아래층 바닥돌에는 각 면마다 3개씩 안기둥을 새기고, 위층 바닥돌에는 네 면에 각각 2구씩 팔부신중상을 조각했는데 현재 4구만 남아 있다. 탑에서 발견된 탑지에는 신라 문성왕(재위 839~857) 때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석탑은 경주 남산에 남아 있는 석탑 가운데 가..
2025.02.06 -
경주 용명리 삼층 석탑
* 慶州 龍明里 三層石塔*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삼층석탑 주변은 일찍이 민가가 들어서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마을의 옛 이름이 명장리였기 때문에 '명장리 삼층석탑'으로 불려 왔다.탑은 2층으로 된 바닥돌에 3층으로 몸돌을 올린 일반적인 신라 석탑 형식이다. 바닥돌은 아래, 위층 모두 모서리기둥과 2개의 안기둥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모두 5단이고 처마 모서리를 가볍게 치켜 올렸고,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였으나 2005년 건천초등학교에 있던 받침돌인 노반을 옮겨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1943년에 해체, 수리할 때 청동 불상 1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탑 외형은 단순하지만 8세기 신라 석탑의 반듯함을 보여 ..
2025.02.05 -
경주 서악동 삼층 석탑
*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이다. 바닥돌은 낮게 받침돌을 깔고 그 위에 8개의 거대한 직사각형 돌을 2단으로 쌓아 올렸다. 1층은 남쪽 면에 네모꼴로 파서 문을 표시하였고, 그 좌우에 금강역사상을 새겼다. 문 모양 부분에는 문고리를 달았던 구멍이 2개씩 남아 있다. 지붕돌은 벽돌탑처럼 아래위 쪽이 계단식이고 처마가 평행한 직선이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답사 노트: 통일 신라 시대 조성한 서악동 삼층 석탑이 있는 곳은 서악동 고분군 앞이었다. 탑의 서편으로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 등 네 기의 왕릉이 있어 왕실에서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려고 세우진 않았을까? 왜 여기 세웠을까, 조선 후기에 영경사 터라고 하나 자세한 내력을 알 바 없..
2025.01.09 -
경주 천군동 동, 서 삼층 석탑
* 慶州 千軍洞 東,西 三層石塔*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두 석탑은 크기나 형식이 동일한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39년 복원했다. 서탑이 보존 상태가 좀 더 양호하다. 동, 서 2층의 바닥돌은 모서리 기둥과 2개씩의 안기둥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의 밑면 받침은 모두 5단이며, 처마는 네 모서리가 치켜 올라간 형태이고 모서리의 각 끝부분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동탑의 꼭대기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고, 서탑은 머리장식의 받침인 노반과 복발, 보륜 2개가 남아 있다. 절 이름이나 연혁은 알려진 바 없지만,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상당히 격이 높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답사 노트: 석탑 주변으로 들판이 펼쳐..
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