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프랑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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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DAY | 오 빼드로우소 >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완주)
2019.4.20.(토), 맑음.20.8km(807.6km) / 5시간 9분달이 중천에 있을 때 오떼로 알베르게를 나섰다. 손명락이 혼잣말인 듯 지나가는 소리로 “아쉽다. 천천히 걷고 싶다.”라고 했다. 아쉬움과 환희의 교차점에서 카미노를 이미 완주해 본 사람의 말이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하고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남은 거리 19.308km가 적힌 오빼드로우소의 마지막 표석을 확인하며 우리는 0km를 향해 깜깜한 숲길로 들어섰다. 혼자였다면 스산할 수 있었으나 길동무가 있어 걱정 없었다. 달빛을 받으며 푸근한 마음으로 밤길을 걸었다. 한 시간을 걸으니 산티아고 공항 울타리가 나타났다. 공항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안에 보이는 것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철골조 ..
2025.01.24 -
30 DAY | 아르수아 > 오 빼드로우소
2019.4.19.(금), 비 후 흐림.19.9km(786.8km) / 4시간 56분빗발이 땅을 적셨다. 배낭에 레인 커버를 씌우고 어김없이 대장정에 나섰다. 늦게 출발하겠다던 정재형과 김○주, 최인규가 알베르게 창문에 서서 하트를 날렸다. 먼 길을 나서는 격려였다. 조그만 일에도 마음을 써주는 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카미노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을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응원 속에 프랑스 생장피드포르를 기점으로 한 달째 걷고 있다. 멀고 멀게만 생각했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이면 꿈에도 그리던 그곳에 발을 내디딘다. 계획을 맞추려고 오늘은 20km만 걷고, 쉬기로 했다. 10여 분 걸었다. 아스 바로사스 마을에 들어섰다. 오른..
2025.01.23 -
29 DAY | 빨라스 데 레이 > 아르수아
2019.4.18.(목), 맑음.30.3km(766.9km) / 7시간 32분알베르게 Castro 호스텔에서는 음식 파는 카페 영업을 하면서도 작은 주방을 만들어놓았다. 가난한 순례자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대부분 그러하지 않았는데 고마웠다. 참치를 곁들인 라면을 끓였다. 젓가락이 없다고 하자 여종업원이 포크까지 갖다주는 친절에 감동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져선지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동트기 전에 호스텔을 나왔다. 카미노는 호스텔 옆 순례자상 샘터에서 시작됐다. 검푸른 하늘에 뜬 둥근달이 어두운 길을 밝혀주려는지 아직 서산을 넘지 않고 머뭇거렸다. 마을 끝 집에 다릿발을 세워 올린 창고가 보였다. 쥐와 습기를 막으려고 세운 ‘오레오horreo’로 불리는 옥수수 저장고였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온 ..
2025.01.21 -
28 DAY | 뽀르또마린 > 빨라스 데 레이
2019.4.17.(수), 흐린 후 비.25.2km(736.6km) / 5시간 43분잠을 설친 탓인지 몸이 개운치 않았다.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고 종아리도 묵직했다. 이제 백 킬로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힘내자며 자신에게 속다짐을 놓았다. 호스텔에서 조식을 마쳤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에 걸음을 빨리했다. 또레스 강(미뇨 강의 지류) 위의 다리를 건넜다. 여명이 밝아 왔다. 분위기가 그윽했다. 여기저기서 순례자들이 나타났다.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이들이 많았다. 숲길로 접어들자, 카미노는 밀밭 사이의 오솔길로 변하더니 금방 다시 도로를 내놓았다. 세라믹 도자기 공장 끝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흙길로 접어들었다. 산불이 다녀갔나 보다. 쭉 뻗은 나무들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보기에 딱했다. 어디선..
2025.01.21 -
27 DAY | 사리아 > 뽀르또마린
2019.4.16.(화), 맑음.23km(711.4km) / 6시간 20분아침을 빵과 우유로 먹고 정각 여덟 시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는 비가 종일 내렸는데 오늘은 햇살이 눈부시다. 물기 밴 등산화도 신문지를 구겨 넣은 덕분인지 보송보송해졌다. 발걸음이 경쾌했다. 카미노 사인이 시작되는 골목 한가운데에서 뜻밖에 태극기를 보았다. 늘어나는 한국 순례자를 유치하려는 알베르게의 광고였다. 우리나라의 드높아진 위상을 보는 것 같아 흐뭇했다. 골목이 끝나는 언덕에 알파벳으로 ‘SARRIA' 대형 글자가 세워져 있고, 살바도르 성당Iglesia del Salvador 뒤로는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막달레나 수도원Convento de la Magdalena이 우람..
2025.01.18 -
26 DAY | 뜨리아까스텔라 > 사리아
2019.4.15.(월), 비.19.1km(688.4km) / 4시간 56분일어나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찌푸린 하늘을 봐서는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우의를 덮어쓰고 길을 나섰다. 10여 분을 걷자 도로 끝에서부터는 두 갈래로 길이 나누어진다. 왼쪽 길은 사모스를 경유하고 오른쪽 길은 산 힐로 간다. 두 길은 약 15km 지점의 아기아다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망설이다 산 힐로 향했다. 왼쪽 길보다 6.5km 가까운 대신 가팔랐다. 카미노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듯 우리 삶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둘러 가든 질러가든 종착지에서 만나게 된다. 카미노 걷기처럼 열심히 살면 된다.산 힐로 향하는 길은 얄밉게도 오르막길이었다. 한 무리 순례자가 똑같은 검은 우의를 쓰고 앞서 걸었다. 덩치..
2025.01.18 -
25 DAY | 오세브레이로 > 뜨리아까스텔라
2019.4.14.(일), 아침 비 후 맑음.21.7km(669.3km) / 6시간 48분일찍이 눈을 떴다. 그러나 알베르게에서 취사할 수 없기에 천천히 샤워하고 느긋하게 배낭을 꾸렸다. 는개가 소리 없이 안개처럼 내렸다. 배낭에 레인 커버를 씌우고 길을 나섰다. 길가에 잔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으스름한 날씨가 오히려 아침 분위기를 그윽하게 만들었다.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많고 안개가 끼는 등 기상 변화가 심하다더니 첫날부터 그 맛을 톡톡히 보여주었다.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되돌아오는 한인 청년을 만났다. 알베르게에 휴대폰을 두고 와 가지러 간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종교 순례를 온 그는 카미노에서 몇 번 얼굴을 익힌 구미에서 온 건장한 젊은이였다. 나도 모르게 내 휴대폰을 찾았다. 제자리에 있었..
2025.01.17 -
24 DAY |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 오세브레이로
2019.4.13.(토), 맑음.28.7km(647.6km) / 8시간 7분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용혜원 시 중에서 쓰다[낙관]. 용혜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담긴 액자가 삐에드라 알베르게의 복도를 장식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 순례자가 다녀갔기에 한글 시를 장식해 두었을까. 낙관까지 찍혀있으니 아무래도 한국인이 선물했을 것 같다.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주인에게 한국 시를 게시해 고맙다고 전하니 좋아했다. 주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알베르게 앞 발까르세 강을 끼고 언덕 위로 도로가 뻗어나 있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길이었다. 오르막 끝에서 고속도로 터널이 보였다. 카미노는 고속도로의 차벽을 따라 작은 마을 뻬헤르를 경유해 뜨리바델로까지..
2025.01.15 -
23 DAY | 뽄페라다 >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2019.4.12.(금), 맑음.27.1km(618.9km) / 7시간 24분눈을 뜨니 아스또르가에 이어 이곳 산 니콜라스 데 플루에 알베르게에서도 아름다운 성가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니 가스펠이다. 좋아하는 흑인 영가와 리듬이 같다. 아침 음악은 참으로 신선하다. 카미노에서는 음악 듣기가 쉽지 않은데 알베르게에서라도 이런 음악을 제공해 주니 감사하고 행복하다. 라면을 끓여 먹고 길을 나서는 동안 아름다운 화음이 계속 흘렀다.십 분 만에 뽄페라다 요새로 불리는 템플 기사단의 성Castillo de los Templarios에 왔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성채는 전투적인 위엄을 자아냈다. 이 성은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아 1178년에 지어졌다. 성벽을 따라 총안과 망루, 맹세의 ..
2025.01.15 -
22 DAY | 폰세바돈 > 뽄페라다
2019.4.11.(목), 맑음.27.6km(591.8km) / 8시간 2분여섯 시에 일어나 간단한 조식을 마친 후 알베르게를 나왔다. 밤새 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얼어 도로가 빙판길이 돼 있었다. 조심스레 언덕을 올랐다. 아침 해가 찬연스럽게 폰세바돈에서 지평선까지 비추었다.삼십 분을 더 오르니 1,530m 정상에 철 십자가La Cruz de Ferro가 나왔다. 철 십자가는 5미터 정도의 나무 지주 꼭대기에 얹혀 있어 조그맣게 보였다. 켈트인들은 산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산 정상이나 고갯마루에 돌을 놓는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관습에 순례자들도 무사 안녕을 빌며 철 십자가에 돌을 던진다. 돌무더기에 올라가니 가족이나 친구,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사진, 이름이 적힌 돌들이 소원처럼 ..
202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