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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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꽃병을 보고
1. '텃밭의 여왕' 초청으로 여러 선생님과 함께 디저트 카페 에 갔다. 우리는 그가 사전에 주문한 치킨 아보카도 샐러드와 맛있는 프렌치토스트, 바게트, 시오 빵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메리카노도 마셨다. 미쿡 사람 된 기분이랄까. 카페 옆 텃밭에는 올해도 얻어먹을 채소가 따스한 햇볕을 쬐며 다소곳이 자라고 있었다. 카페를 나와서는 방문 기념으로 텃밭의 여왕이 시골에서 가져온 각종 채소를 한 보따리씩 선물 받았다. 그가 나눠주는 재미로 산다지만, 다음 번에는 내가 사야겠다. 2. 창가의 앉았던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자, 막혔던 창밖으로 시원한 시야가 펼쳐졌다. 파란 하늘과 푸른 산, 과수원 등이 시골 풍경을 자아냈다. 바쁜 것 없는 우리는 식후에도 느긋하게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화 중에 우연히 바로..
2024.04.14 -
대구 서문 시장에서
아내 모자를 사려고 서문 시장에 함께 갔다. 점포 문을 열지 않거나 적재물 포장을 벗기지 않은 곳이 많았다. 유관 업주가 일요일의 노는 업종들이라고 하면서 모자 파는 집들도 1, 3주 일요일은 쉰다고 했다. 시절이 시나브로 변한 것이다. 사람들이 노는 날일수록 시장은 장사한다고 생각한 내가 구식이었다. 노점 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별맛이 아니건만 빈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대부분 메뉴가 오천 원이었다. 값이 싸긴 쌌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남들이 사 먹는 호떡이 먹음직스럽게 보여 나도 샀다. 호떡은 기름에 튀기듯 구워 도넛처럼 배가 불룩했다. 하나 달라고 하자, 불룩한 부분을 콕 눌러 바람을 빼 얄팍해지자 반으로 접어 종이컵에 넣어 주었다. 신기했다. 굽는 것이 달랐고 싸 주..
2024.04.08 -
사랑하는지 알려나 몰라
정오를 조금 넘겨 ○○초등학교에 갔다. 교문 앞에 울멍줄멍 모여든 학부모들 뒤에 섰다. 아이들이 한 반 빠져나가면 다음 반이 나오곤 한다.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떠나자 제일 앞자리에 서게 됐다. 선생님이 병아리 한 무리를 데리고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멀리서 봐도 사랑하는 병아리가 보였다. 손을 흔들었다. 저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선생님과 하교 인사가 끝나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사랑이 봄바람을 타고 달려왔다. 나는 이만수 포수처럼 쪼그려 앉아 사랑을 받았다. 스트라이크! 야구 장갑으로 공을 잡듯 아이를 꼭 껴안고 일어섰다. 손을 잡고 걸었다. 따뜻했다. 급식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고 자랑했다. 밥을 먹여서 하교시키나 보다. 먹고 싶은 것을 사주려고 했는데…. 조그만 아이 등에 커다란 가방이 버겁게 ..
2024.03.12 -
이사를 와서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삿짐센터에서 나와 포장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출근했다. 시니어 일을 한 지 아직 한 달을 채우지 못해 월차 운운하기 거시기했다. 대신 아들과 딸이 월차를 내고 도우러 왔다. 정오가 되어서야 퇴근해 돌아와 짐 정리를 도왔다. 한 달 전부터 이사 준비하느라 자질구레한 물건과 옷가지를 하나씩 버려왔다. 그런데도 이삿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니 그동안 버린 것이 표시가 나지 않았다. 모든 짐이 구닥다리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투성이다. 집사람과 경쟁하듯 버렸는데 마치 큰일이 허사로 돌아간 듯 느껴진다. 청춘일 때 호감을 느꼈던 물건들이 지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프로야구 사인볼, 서화, 수집품, 도서 등- 빼어나거나 값진 것이 아니고, 자식들도 탐하지..
2024.02.27 -
해인사 원당암에서
갑진년 원단을 알리는 아침 해를 본 후 영단에 참배하려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원당암에 도착해 미소굴에서 해님을 기다렸다. 영하 6도, 구름 한 점 없이 상쾌한 날씨였으나 동녘은 흐렸다. 願堂에 참배하고 나오는데 노보살이 아침 먹고 왔느냐면서 떡국을 함께 먹자고 했다. 큰 대접의 떡국을 작은 그릇에 조금 덜고 대접은 내게 주었다. 떡국이 조금 식었으나 온기가 있었다. 떡국을 먹으면서 보살이 "스님들이 방장스님께 세배드린 후 공양한 떡국을 보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살은 떡국을 천천히 먹으며 숟가락을 함께 놓고는 커피까지 타 주셨다. 올해는 먹을 복이 있으려나. 설날 아침에 공양간도 아닌 법당에서 도승용 떡국을 먹었으니, 범부로서는 예삿일이 아니다. 떡국값을 치르자면 올 한해 경거망동을 삼가야겠지…. ..
2024.02.10 -
다큐 '건국전쟁'을 보고
CGV 대구스타디움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을 관람했다. 고 이승만 대통령의 희생적인 업적에 관한 실제 영상물을 보고 감명받았다. 무지몽매한 탓에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것과 떨리는 듯한 묘한 음성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는 명언만 알고 업적을 간과한 무지가 부끄러웠다. 토지 개혁과 교육, 여성의 투표권 부여, 외교, 인재 배양 등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헌신적인 애국정신을 늦게나마 조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데다 남에는 아직 좌우가 갈라진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덤으로 느낀 점, 팩트와 픽션을 적당히 버무린 영화의 허구와 실제 있었던 영상물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의 차이를 확인했다. ..
2024.02.09 -
또 보고 싶은 녀석
어제저녁 손자가 인라인스케이트 6급 심사를 본다기에 참관했다. 9급에서 7급까지는 서류 심사로 통과했고 6급부터는 실기 심사였다. 참관석 창 너머로 바라보니 앞으로, 뒤로, 앉아 타기와 정지법 등을 보는 것 같았다. 심사 받는 어린이 중 미취학 아동인 손자가 제일 작았다. 아렸지만 콩알만 한 녀석의 타는 모습이 다람쥐같이 앙증맞았다. 내가 보기엔 무난히 통과할 것 같은데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다고 한다. 자신감이 뿜뿜 돋도록 심사를 통과하면 좋겠다. 나도 은퇴 전엔 운동 삼아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다. 요즘은 하지 않아 피트니스와 경기용 스케이트를 클럽에 기증했다. 손자가 타는 걸 보니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함께 탈 기회가 생긴다면 새로 사서라도 같이 타고 싶다. 심사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2023.12.14 -
무릇 구름이라고 하는
무릇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뭉게뭉게 한없이 피어 오르기도 하고 급히 날아가다가 휘어 들기도 하며 아주 엷고 가늘어 흐느적거리기도 하여 산에도 길게 얽매여 있지 않고 하늘에도 머물러 있지 않아 동서남북 가는 곳마다 구속될 게 없다. 그러면서도 경각의 사이에 변화가 무상하여 사람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게 구름이다. 느릿느릿 퍼지는 구름은 군자의 거동 같고 거두어 들이 듯 모여드는 구름은 지사(志士)의 취미와도 같은 것이다. 한창 가뭄이 들 때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인(仁)이라 하겠고, 오기는 왔지만 길게 머물러 있지 않으며 갈 때에도 미련도 없이 가니 이 또한 통달(通達)이 아닌가. 그리고 구름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검은 것은 모두 구름의 정색(正色)이 아니다. 오직 흰빛이 구름의 상(常)인 ..
2023.12.11 -
친구 딸 결혼식
오랜만에 청첩을 받아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시류에 맞추어 청첩을 모바일로 받으니 편리했다. 사회자도 이제는 연예인처럼 임팩트하게 박력 있었고, 주례가 없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주례사 대신 신랑·신부가 혼인 서약문을 써와 낭독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겠다'는 맹세를 하객에게 대못 박듯 밝혔다. 성혼 서약을 들으며 내가 결혼할 때와 비교해 느껴지는 바가 컸다. 성혼 선언은 친구(신부 아버지)가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적어도 십 년은 늦은 혼사다. 태연한 척했지만, 무척 감개무량했을 거다. 딸 결혼을 '딸 치운다'라고 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불성설이었지만 당시에 문화가 그랬다. 지금은 남녀가 당당하고 평등해 보기에 좋았다. 언제부턴가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가 는다. 출산율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뉴..
2023.12.10 -
즐거운 ESD 모임
ESD 모임에 가려고 시내를 걸었다. 초저녁인데 어둠이 짙게 깔렸다. 구청에서 연말연시용 장식으로 가로수와 화단에 별 전등을 달았다. 반짝이는 별빛이 예쁘다. 시내로 갈수록 거리가 한산했다. 변두리까지 도시화가 진전되어 도심이 점점 쇠퇴해 가는 것을 실감한다. 시내가 젊음의 거리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모임에 가는 동안 김광석의 '거리에서' 가사 몇 구절이 저절로 웅얼거려졌다. 모임은 서울 아시안 게임이 열리던 1986년에 동료 아홉 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여느 모임처럼 재밌게 잘 지내자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근 사십 년 됐다. 두 명은 오래전에 탈퇴했고 한 명은 몇 년 전 서울로 이사해 소식이 끊겼다. 지금은 여섯 명이 한결같다. 유독 인사말 잘하는 鄭 회장과 성실한 李 총무가 종신직으..
202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