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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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산 케이블카 기공식을 보고
비가 내리는 문경새재 제2주차장. 전국에서 달려온 '장구의 신 박서진' 표식을 한 관광버스가 일렬횡대로 서 있었다. 우중에도 불구하고 부산, 울산, 인천, 충남 등 멀리서 온 버스인만큼 찐팬들이 몰려온 모양이다. 새재 야외공연장 앞에서 주흘산 케이블카 기공식 플래카드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기공식 행사가 끝나고 축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하얀색 정장을 입은 스타 박서진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트로트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주흘산 케이블카 공사는 하부 승강장에서 상부 승강장인 관봉(꼬깔봉, 1,030m) 인근 해발 974m까지 길이 1.86㎞를 편도 7분의 속도로 시간당 최대 1,500명의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내년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고 2026.1.1. 해돋이에 첫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
2024.04.23 -
추억의 리어카 목마와 꽃마차
얼마 전 달성 공원 앞에서 우연히 말 한 필이 끄는 꽃 마차와 리어카 목마를 봤다. 두 가지 다 수십 년 만에 보는 추억의 사물이었다. 목마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늙수그레한 영감님이 리어카에 알록달록 색칠한 말 모형을 스프링으로 매달아 싣고 다니면서 어린이를 태우던 놀이 기구였다. PVC로 제조한 모형이었지만 목마로 불렸다. 리어카 목마가 나타나면 온 동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아끌고 몰려 들었다. 리어카에 장착한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는 경쾌하고 신났다. 노래가 몇 곡 끝나면 아이들이 목마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내려올 생각이 없다.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울고불고 아우성치고 엄마들은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리어카 목마는 옛 영화를 그리며 담장 한편에서..
2024.04.13 -
대구 수목원에서
점심을 먹고 에 갔다. 평일이어서 한산한 느낌을 받았다. 봄이 왔건만 나목들은 아직 썰렁한 겨울 티를 벗지 못했다. 그런데도 직원들이 봄단장하려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빗질하고 화단 점검에 손길이 부지런하다. 수목원에 올 때마다 기적 하나를 느끼게 된다. 20~30년 전, 변두리였던 이곳은 대구시 생활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쓰레기가 18m 높이로 쌓여 악취가 진동하고 먼지가 비산해 시민들이 기피하는 장소였다. 그러던 중 1996년 지하철 건설 공사를 계기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공사장에서 나오는 잔토를 활용해 6~7m 복토한 후 그 위에 수목이 자랄 수 있도록 다시 조경토를 2~3m 복토해 2002년 전국 최초로 쓰레기 매립장을 수목원으로 조성했다. 식물의 자연환경 보전과 시민의 정서 함양은 물론 지역 발..
2024.04.05 -
한가한 어느 봄날
잦은 비와 꽃샘추위로 감기에 걸렸는데 컨디션이 회복돼 남천에 나갔다. 욱수천에서 남천 합류점을 거쳐 상류 쪽 백천동까지 걸었다. 하늘이 땅이 냇물이 다 봄이었다. 포장길이 끝나는 백천동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난 풀밭에 앉아 구부정한 은빛 냇물을 바라보며 물멍하는 데 집사람이 퐁당퐁당 돌을 던진다. 돌아가자는 신호인 갑다. (2024.3.31.) 봄날엔 다 꽃입니다 꽃도 꽃이고, 참새들도 꽃이고, 사람도 꽃입니다 벚꽃 흐드러진 공원의 벤치 반가사유상 그윽한 꽃 피어 있습니다 신발이 낡았습니다 먼 길 걸어온 꽃입니다 - 풍경을 찍다, 문창갑 시인 -
2024.04.03 -
달성공원 소풍을 하고
Y 교수님을 따라 여러 선생님과 함께 달성 공원 소풍을 했다. 수운 최재우 동상과 관풍루, 토성, 이상화 시비, 석주 이상용 구국 기념비, 왕산 허위 선생 순국 기념비, 흔적도 없는 만경루와 일제강점기 때의 신사(神社), 어린이 헌장비, 달성서씨 유허비, 서침나무, 대한광복회 설립 장소, 나사백(가이스카향나무) 등 현장에서 그것에 얽힌 교수님의 설명을 경청했다. 몰랐던 이야기와 꼭 알아야 할 사항, 답사 시 알아두면 좋을 말씀까지 들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소풍이라기보다 세미 답사 같았다. 당초 두 시간 계획했던 소풍이 토성 마을까지 둘러보면서 네 시간 넘게 걸렸다. 그동안 건성건성 다녔던 수많은 나들이가 살짝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는 뜻깊은 기회이었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2024.04.01 -
올해 해님 맞이
새벽에 눈을 떴다. 어둠이 짙게 쌓인 창밖을 바라보다 양치만 하고 차를 몰고 집을 나왔다. 정초에 궂은 날씨로 맞이 못한 해님을 뵈러 하양경관단지로 갔다. 거리의 자동차들이 무엇엔가 쫓기는 것처럼 어둠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달려간다. 대부 잠수교를 건너 차를 댔다. 주차장이 너무 한산했다. 새벽달은 중천에서 멈춘 듯 섰고 어스름 동녘은 한줄기 붉은빛을 잉태했다. 해님을 기다리며 강가를 거니니 오리 가족들이 푸드렁 날아오른다. 단잠을 깨웠나 보다. 신혼부부들도 여기저기서 날아오른다. 미안했다. 날이 밝아지면서 동녘의 붉은 기운이 희꾸룸하게 변했다. 저 뒤 어디쯤 해님은 바쁘게 행차 중이리라. 해님 맞이 어려울까 염려하는데 06:20 노란 이마를 내보이시다가 조금씩 조금씩 돋아나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
2024.03.30 -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파계 교차로에서 점심 먹고 머지않은 용진마을에 위치한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니 7km 거리다. 주차장이 별도 없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 생가 입구 왼쪽에는 안내판이, 오른쪽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문구와 88 올림픽 오륜기 로고가 새겨진 기념비가 맞아준다. 마당에 들어서니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 동상, 작은 화단에 업적비가 서 있다. 가옥은 평범한 시골집 그대로 작고 아담했다. 동상은 실물 크기이고 업적비는 근래에 세운 것으로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이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살았다. 2010년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종친은 집터와 생가를 대구시에 기부채납했다. 탐방객이 몇 사람 없어 둘러보기 편했다. 방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 ..
2024.03.23 -
3월 정기 산행을 다녀와서
등산 동호회에서 지난달 갑진년 시산제를 모셨다. 매월 한 번 산행하던 요일을 올해부터 토요일에서 평일로 변경했는데 하필 취업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뿐 아니라 몇 사람이 더 불참해 이달부터 다시 토요 산행으로 환원했다. 회원들이 함께 대구 둘레길 제15코스 용지팔현길을 걸었다. 여름 같은 봄날이었다. 난이도가 쉬운 코스지만 산속으로 들어가니 심산과 다름없이 적막공산이었다. 간간이 새소리가 들려오고 군데군데 진달래가 난만히 피어난 등산로의 고요한 정취는 심신을 편안케 했다. 다만 계류가 보이지 않아 봄의 교향곡인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어 살짝 아쉬웠다. 등산로가 갈래갈래 갈라졌고, 체육시설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도시와 인접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진지하게 산행하려고 회원 모두 ..
2024.03.17 -
별스러운 비단잉어
얼마 전 통도사의 작은 연못 구룡지(九龍池)에서 별스러운 비단잉어 두 마리를 관찰했다. 한 마리는 죽은 척 둥둥 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형태를 바로 잡고 팔팔하게 유영했다. 물고기가 죽어 뒤집혀 있는 것을 보고 주워내야 할 텐데 고민하던 내가 우스꽝스러웠다. 또 한 마리는 연못에서 가장 큰 녀석이었는데 등과 꼬리지느러미가 물어뜯겼고 몸체에 상처가 나 있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스님 면벽하듯 벽만 바라본 채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안 지켜보고 섰는데 별꼴이었다. 전자는 죽은 척하여 중생을 놀리고 후자는 고찰의 연못이 아니랄까 봐 스님 흉내를 내고 있다. 연못이 겉보기에 평화롭게 보이지만, 남모르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기이했다. 사람살이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24.03.16 -
구미 문수사에 다녀오다
모처럼 친구들과 부부 동반 나들이했다. 승용차 여섯 대에 나누어 타고 구미시 도개면 소재지에서 모여 점심 먹고 인근의 문수사(文殊寺)를 갔다. 문수사라는 절은 전국의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꽃이 만발하듯 산재해 있는 문수 사명(寺名)은 문수보살 신앙에서 비롯됐다. 불교의 문수보살은 복덕과 반야 지혜*를 상징하며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로 등장한다. 643년 신라의 자장율사가 문수 신앙을 정착했다. 구미(도개) 문수사는 오십 년 전 1972년 건립된 극락보전, 지장전, 산신각, 요사체, 오 층 석탑, 인근 궁기동에서 발굴된 불상(2기 전시)과 자연 석굴 법당인 사자암 등이 있다. 사자암은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 때부터 납석사(納石寺)로 불리다가 1865년(조선 고종 2년) 폐사 됐다. 수년 후..
2024.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