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여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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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영지 석불좌상
* 影池 石佛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현지 안내판(요약)이 석불좌상은 얼굴에 손상은 많지만, 광배와 대좌표효까지 남아있다. 광배는 불상과 한 돌로 조각했다.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오른쪽 어깨는 노출되고 원쪽 어깨만 가사를 걸친 형식)과 황마촉지인(오른손을 폴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을 한 손 모양에서 석굴암 본존상의 모습을 따랐다. 영지에 인접해 있어 아사달이 아사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영지 곁에 모셔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1740년에 쓰인 '불국사고금창기'에 영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백제 석공 아사달이 불국사 석가탑(무영탑)을 만들고 있었다. 아내 아사녀가 남편이 그리워 서라벌까지 찾아왔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으며, 탑이 완공되면 연못에 ..
2025.01.17 -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 慶州 骨屈庵 磨崖如來座像*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해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불상이다. 상투 모양의 머리인 육계가 솟아 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눈, 코, 입은 좁고 가늘다. 돋을새김한 얼굴에 비해 몸은 평평한 편이며 어깨가 넓다. 옷 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을 이루고, 겨드랑이 부분에는 팔과 몸이 구분되도록 U자 모양의 무늬를 넣었다. 불상의 뒤쪽 암벽에 광배를 새겼는데 머리의 광배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몸 주변에는 불꽃무늬다. 광배와 더불어 불상의 목과 가슴 윗부분에 손상이 있다. 이 불상은 평면적인 신체와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의 옷 주름 등의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림사를 중창한 원효대사가 말년..
2025.01.16 -
경주 문화원에서
경주는 신라 천 년의 이미지와 함께 조선 시대의 자취도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월요일 오전의 경주 문화원은 조용했다. 조선 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이었던 경주 문화원은 1915년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 분관이 설치됐다. 이때 경주읍성 남문 밖에 있던 국보 성덕대왕신종과 종각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광복 이후에도 경주박물관으로 이용하다가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건립되자 신종을 다시 옮겨 가고 종각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경주부 관아 건물은 현재 향토사료관으로 경주읍성 복원도와 조선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향토사료관 앞의 전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왼쪽(서쪽) 나무는 1926년 방한한 스웨덴 황태자가 기념식수를 했고, 비슷하게 자란 오른쪽(동쪽)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표식..
202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