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8. 00:41ㆍ산티아고 순례길
2019.4.15.(월), 비.
19.1km(688.4km) / 4시간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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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찌푸린 하늘을 봐서는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우의를 덮어쓰고 길을 나섰다. 10여 분을 걷자 도로 끝에서부터는 두 갈래로 길이 나누어진다. 왼쪽 길은 사모스를 경유하고 오른쪽 길은 산 힐로 간다. 두 길은 약 15km 지점의 아기아다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망설이다 산 힐로 향했다. 왼쪽 길보다 6.5km 가까운 대신 가팔랐다. 카미노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듯 우리 삶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둘러 가든 질러가든 종착지에서 만나게 된다. 카미노 걷기처럼 열심히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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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힐로 향하는 길은 얄밉게도 오르막길이었다. 한 무리 순례자가 똑같은 검은 우의를 쓰고 앞서 걸었다. 덩치 큰 서양인들이라 특공대처럼 보인다. 길에는 소똥 물이 도랑물 흐르듯 내려왔다. 허리춤을 끌어올려 바짓단은 괜찮았지만, 신발은 어쩔 수 없이 똥물에 담가야 했다. 꺼림칙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마을을 지나 차도에 나오자, 비가 잦아들었다. 앞서가던 ‘남원 총각’이 길섶에 쪼그려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꼭 찾아라.”고 응원해 주었다. 총각의 진지한 태도가 순하고 착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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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힐을 지나 30여 분 뒤, 카미노 사인이 두 갈래로 또 갈라졌다. 왼쪽은 자동차 도로, 오른쪽은 흙길이었다. 두 길은 몬딴 마을에서 또다시 만나게 돼 있었다. 비가 오는 터라 자동차 도로를 택했다.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흙길로 향한 순례자들이 간간이 비명을 질러 댔다. 길이 매우 미끄러운 모양이었다. 비가 잠시 갰다.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면서 오늘 목적지 사리아가 희미하게 보였다. 내리막 도로가 끝나는 지점은 삼거리였다. 왼쪽 길은 사모아, 오른쪽은 사리아로 가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오른쪽 사리아로 가고, 남원 총각은 사모아 마을을 구경하려고 왼쪽 길로 향했다. 일행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몬딴 마을에 당도했다. 흙길을 내려온 순례자들도 개울을 건너 우리 쪽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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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카미노는 비와 바람과 안개로 소용돌이쳤다. 누가 시켜서 걷는 것도 아니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걷나 싶었다. 카미노를 처음 계획했을 때, 솔직히 풍광 좋은 장거리 올레길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혼자서 가이드북을 펼쳐 들고 걷는 서구인들을 보면서 생각이 물들었다. 그들에게서 카미노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책에서 순례길을 걷는 이유가 ‘자기를 찾기 위해서 걷는다.’는 고백을 읽었지만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직접 체험해 보니 그 말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됐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다. 핑계 같지만, 나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지난날을 반추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고, 돌아갈 때는 달라진 나 자신이 돼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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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떼아르꾸다 마을을 나오면서 흰 소 일곱 마리가 눈에 띄었다. 초원에 꿇어앉아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반성하는 내 모습 같아 웃음이 나왔다. 건너편 언덕에는 누런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문득 심우도尋牛圖가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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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아졌다. 초록 숲이 물기를 머금어 더 싱싱해졌다. 아름다운 풍광에 힘든 줄 모르고 푸렐라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바르가 보였다. 누군가 등산화에 나뭇잎을 꽂아 출입구 좌우에 걸어 놓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해 준 신발에 건네는 꽃다발 같은 것이리라. 주인의 따뜻한 심성이 전해졌다. 일행들은 맥주와 카페콘레체를 마셨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마을을 벗어날 때쯤 먹구름이 다시 비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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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삔띤과 사모스 루트와 합류하는 아기아다 마을을 지나 50여 분 걸어 사리아에 도착했다. 길바닥 사인을 따라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우리의 등록을 끝으로 정원이 다 찼다. 2층에는 우의와 빨래를 말리느라 빈 곳이 없었다. 신발장에서 소똥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래도 빗속을 뚫고 온 순례자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들, 풀밭의 젖소들, 심지어 둥지의 황새도 비를 흠뻑 맞았다. 봄비에 젖으면 만물은 자란다고 했다. 내 마음이 한 뼘이라도 컸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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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를 신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바르 앞에서 ‘미스터 카미노’가 많은 순례자를 끌어모아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스터 카미노가 우리를 보고 엄지척을 하며 뭐라고 소리치니 일행들이 모두 환호하며 엄지척을 해주었다. 우리도 반가운 손을 흔들어 큰 목소리로 ‘부엔 카미노’로 답례했다. 그는 스페인 기질을 100% 가진 사나이였다. 식사 후 가까운 도심을 탐방했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거리는 118km이기 때문에 사리아는 콤포스텔라compostela(100km 이상 걸은 사람에게 발급하는 순례자 증명서)를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었다. 그래선지 작은 배낭을 멘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순례자 숫자가 눈으로 확인될 만큼 엄청나게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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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현과 함께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바르를 기웃거리며 메뉴를 살피다가 사리아 시청 광장까지 가게 됐다. 노보아 호텔 앞에 사리아를 건설한 레온 왕국의 알폰소 9세 동상이 있었다. 왕은 망토에 순례자 가리비를 달고 검에 두 손을 얹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호텔 옆 타파스에 들어가 주인의 친절한 환대를 받으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나오면서 신문지를 얻어와 비에 젖은 눅눅한 등산화 속에 꾸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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