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프랑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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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DAY | 아스또르가 > 폰세바돈
2019.4.10.(수), 비 후 갬 반복.27.3km(564.2km) / 7시간 24분아침 여섯 시, 복도에서 성가가 들렸다. 알베르게에서 처음으로 들려주는 음악 서비스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화음이 마치 천상의 소리 같았다.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찌든 영혼을 말끔히 씻어 주는 느낌이다. 비록 녹음이었으나 엄숙히 흘러나오는 성가는 세상의 잡념을 지워버리고 순수하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게 했다.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카미노 사인이 대성당으로 향했다. 간간이 비가 내려 우의를 껴입었다. 성당들은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 그런 성당을 하루에도 몇 곳이나 지나간다. 지금 걷고 있는 카미노도 한 순교자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 길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
2025.01.12 -
20 DAY | 산 마르띤 델 카미노 > 아스또르가
2019.4.9.(화), 오전 비, 오후 갬.22.9km(536.9km) / 5시간 12분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와인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모두 컨디션이 좋았다. 부지런한 알베르게 관리자가 빵을 구워놓았다. 우리 또래일 것 같은데 머리가 벗어지고 구레나룻에 두꺼운 돋보기를 꼈다. 준비된 음식을 먹으라는 시늉을 손짓으로 표현할 뿐 말이 없었다. 숙박 등록할 때부터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랬지만, 하여간 말수가 적은 인상적인 양반이었다. 여덟 시 정각에 도네이션 통에 비용을 넣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비가 오려는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노란 화살표가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십여 분 뒤 까날 델 빠라모에서 전원 길로 접어들었다. 붉은 황토밭이 온통 편편옥토처럼 보였다. 구경도 잠시, 카미노 사인은 공장지대..
2025.01.11 -
19 DAY | 레온 > 산 마르띤 델 카미노
2019.4.8.(월), 아침 비 후 맑음.26.5km(514km) / 6시간 40분엊저녁부터 내리던 빗방울이 약해졌다. 비가 그치자, 일곱 시 오십 분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가우디가 지었다는 보띠네스 저택에 다시 갔다. 한산해서 보기에 편했다. 앞 마당의 '벤치에 앉은 가우디 동상'이 건물 분위기와 매우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머문 후 카미노가 이어지는 레온 대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파사드 부분이 보수 중이라 가려져 있었지만 장엄했다. 시간만 된다면 레온은 며칠 머물고 싶은 도시다. 순례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훌륭한 조형물도 따라다닌다는 게 큰 덤인 것 같다. 자연 경관을 따라 마을마다 눈부신 건축물들이 박물관처럼 이어져 있다. 웅장한 건물을 보고 감동을 할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
2025.01.11 -
18 DAY | 엘 부르고 라네로 > 레온
2019.4.7.(일), 맑은 후 저녁 비.37.5km(487.5km) / 8시간 34분오전 일곱 시인데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곤히 자고 있어 조심스레 거동했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37km를 걸어야 하기에 걸음을 서둘렀다. 지평선도 아직 어둠에 덮였다. 한 시간쯤 부지런히 걸으니, 동이 텄다. 아침노을을 받은 들녘이 벌겋게 타올랐다. 떠오르는 태양이 뿜어내는 빛은 신의 은총처럼 우리 앞을 밝혀 주었다. 이때가 되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성스러움 속에서 카미노를 걷는 기쁨을 맛본다. 일행의 뒤를 따르면서 그림자놀이를 즐겼다.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고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혼자 재미에 빠진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니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
2025.01.10 -
17 DAY |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뿔라리오스 > 엘 부르고 라네로
2024.12.29.09:03경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당하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국가 애도 기간: ~2025.1.4.)17 DAY |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뿔라리오스 > 엘 부르고 라네로2019.4.6.(토), 비, 우박.31.4km(450km) / 7시간 54분연일 비가 내린다. 그래도 거침없이 서쪽으로 향해야 하는 우리는 순례자. 비옷을 입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과거의 템플기사단 정신을 존중한다는 관리인과 석별의 사진을 남긴다. 벗겨진 이마의 호인상인 그가 미소를 지으며 “부엔 카미노” 여정을 빌어주었다. 카미노를 걸을 때는 일행일지라도 나란히 함께 걷기는 어렵다. 보폭이 다를 뿐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몇 미터에서 몇백 미터 이상 떨어져 걷는 경..
2025.01.04 -
16 DAY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뿔라리오스
2024.12.29.09:03경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당하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국가 애도 기간: ~2025.1.4.)16 DAY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뿔라리오스2019.4.5.(금), 비 온 후 흐림.27.3km(418.6km) / 7시간 5분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의 에스삐리뚜 산또 Espiritu Santo 알베르게는 시설이 넓고 깨끗했다. 하지만 여느 곳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방이 너무 정숙하고 일찍 소등해 드나들기에 조심스러웠다. 관리자의 순찰 때문인지, 순례자를 배려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너무 푹신한 매트리스도 거동이 불편했고, 전기꽂이도 입구에만 몇 개 있어 충전하기 어려웠다. 비가 계속 내렸다. 전전반측하..
2025.01.03 -
15 DAY | 가스뜨로헤리스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2024.12.29.09:03경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당하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국가 애도 기간: ~2025.1.4.)15 DAY | 가스뜨로헤리스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2019.4.4.(목), 맑은 후 저녁 비.46.5km(391.3km) / 11시간 19분백 리가 넘는 길을 걸었다. 오늘 카미노는 다양했다. 큰 언덕을 넘었고 호젓한 평원을 지나 운하를 만났다. 목적지인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도착하니 소나기까지 내려 흠뻑 젖었다. 보름 동안 카미노를 걸으면서 처음으로 비를 맞았다. 알베르게에서 젊은 한국인들을 다시 만났다. 카미노는 만남과 이별의 각본 없는 드라마 무대다. 알베르게에서 차려주는 간단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멀기만 한 갈길이 뚜..
2025.01.02 -
14 DAY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까스뜨로헤리스
2024.12.29.09:03경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당하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국가 애도 기간: ~2025.1.4.)14 DAY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까스뜨로헤리스2019.4.3.(수), 흐린 후 맑음.20.2km(344.8km) / 5시간 5분식당이 깜깜했다. 조식을 예약했는데 이상했다. 40여 분을 더 기다리다 식당으로 다시 내려가 불을 켰다. 빵과 우유가 탁자에 놓여있었다. 진작 불을 켜고 봤으면 되었는데 관리인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기다리는 동안 불만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기에 내가 과연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가 맞는가 싶었다. 여섯 시에 일어나 금쪽같은 두 시간을 허비한 뒤 알베르게를 나섰다.오르니요스를 벗어나면 카미노는 메세타 지역이다...
2025.01.01 -
13 DAY | 까르떼누엘라 리오삐꼬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12.29.09:03경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당하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국가 애도 기간: ~2025.1.4.)13 DAY | 까르떼누엘라 리오삐꼬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2019.4.2.(화), 맑음.36km(324.6km) / 9시간 50분어제 남겨둔 바게트 조각을 꾸역꾸역 삼키고 부르고스로 향했다. 서머타임으로 7시에도 깜깜했다. 갈림길이 나오면 손전등으로 노란 화살표를 꼭 확인했다. 부르고스 가는 길은 차량이 많이 다니는 도로였다. 바짝 긴장됐다. 순례길은 오솔길, 들길, 산길, 강변길, 자갈길, 아스팔트길, 골목길 등 길이란 길은 모두 밟게 된다. 주변 환경에 맞추어 생겼으니 어느 길이 좋다, 싫다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때그때 환경에 맞추어 길의 ..
2024.12.31 -
12 DAY | 비암비스띠아 > 까르떼누엘라 리오삐꼬
12.29.09:03경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당하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국가 애도 기간: ~2025.1.4.)12 DAY | 비암비스띠아 > 까르떼누엘라 리오삐꼬2019.4.1.(월), 흐림.30.8km(288.6km) / 7시간 50분어제(3.31.)부터 서머타임이 맞았다. 길을 나섰다. 출발 시각을 한 시간 앞당기니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종일 30km를 걸었다. 날씨가 흐려 걷기가 좋았다. 비가 올까 봐 평소보다 걸음을 서둘렀더니 몸이 물먹은 솜처럼 됐다. 하지만 마음만은 가뜬했다.알베르게를 나와 한 시간쯤 걸으니 밀밭 입구에 철창으로 막은 작은 돌 움막이 나왔다. 이 움막은 부르고스를 만든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뽀르셀로스’ 백작이 말년을 외롭게 보..
2024.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