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DAY |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 오세브레이로

2025. 1. 15. 21:40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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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3.(토), 맑음.
28.7km(647.6km) / 8시간 7분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 용혜원 시 중에서 쓰다[낙관].
  
용혜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담긴 액자가 삐에드라 알베르게의 복도를 장식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 순례자가 다녀갔기에 한글 시를 장식해 두었을까. 낙관까지 찍혀있으니 아무래도 한국인이 선물했을 것 같다.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주인에게 한국 시를 게시해 고맙다고 전하니 좋아했다. 주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알베르게 앞 발까르세 강을 끼고 언덕 위로 도로가 뻗어나 있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길이었다. 오르막 끝에서 고속도로 터널이 보였다. 카미노는 고속도로의 차벽을 따라 작은 마을 뻬헤르를 경유해 뜨리바델로까지 이어졌다. 고속도로 옆으로 계류의 물이 철철 넘치고 때로는 도도히 흐르기도 했다. 마치 냇물 같아 보였지만 발까르세 강(江)이었다.


사람들이 뜨라바델로 길가에서 트럭에 원목을 싣고 있었다. 베어 낸 나무를 가공했는지 근처에 판자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길가의 한 바르에서는 A4용지에 ‘이 집 라면 진짜 맛있어요!!’라고 한글로 쓰붙여놓았다. 한국인 순례자가 그만큼 많다는 걸 보여준다. 한 그릇 사 먹으려니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오늘도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도로는 라 뽀르펠라 데 발까르세, 암바스메스따스, 베가 데 발까르세, 루이뗄란, 라스 에레리아스, 오스피탈까지 이어졌다. 카미노는 한갓진 시골 전원 풍경이었다. 계류 너머로 소와 양,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에 나도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평화로운 목장을 뒤로하며 한 무리 자전거 행렬이 지나갔다. 살아있는 모든 사물이 행복해 보였다.


오스피탈을 지나자, 오르막 산길이다. 좁은 길에는 소똥과 말똥이 떨어져 있어 한눈팔다가는 밟기 딱 좋았다. 이리저리 비껴가며 걸었다. 고도가 높아지자, 거기에 맞는 아름다운 정경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평소에 눈길을 주지 않던 민들레가 반갑기만 했다. 오종종히 모여 앉아 햇볕을 쬐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막 걷기 시작한 손자 녀석처럼 사랑스러웠다. 녀석이 떠올라 걷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렸다. 걸음이 가벼웠다. 산골 마을 라 파바를 거쳐 오르막을 꾸준하게 올라가니 주민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천천히 내려온다. 작업복 차림이어도 멋졌다.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어느새 가스띠야 지방의 마지막 마을인 라 라구나에 들어섰다. 축산 농가가 많아 쇠똥냄새가 물씬 풍겼다. 레온과 갈리시아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빨간 글씨로 ‘갈리시아’라고 쓰인 돌로 만든 경계석에는 기념 낙서가 가득했다. 한글은 보이지 않았다. 낙서가 표석의 관록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가니 돌담길이 나왔다. 우측으로 끼고 돌자 오세브레이로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는 돌집들의 풍경이 마치 수채화 같았다. 동그스름한 돌로 몸통을 쌓고 지붕은 짚으로 엮은 켈트족의 전통 가옥인 초가지붕 집 빠요사palloza였다. 생경한 데도 우리나라 민속촌 같은 정감이 들어 마음이 푸근해졌다.


알베르게로 가기 전,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한 성배를 보존했던 곳으로 유명한 왕립 산따 마리아 성당Parroquia de Santa Maria a Real에 들렀다. 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카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었다. 보수를 했으나 생각보다 작고 검소했다. 제법 큰 기념품 가게들을 통과해 마을 끝에 다다르자, 공립 알베르게 보노Bono가 있었다. 앞 전망이 탁 트인 명당 터였다. 104명 정원이 한 방에 들어가는 대형 도미토리였다. 꽉 찬 사람들로 신경이 쓰였다. 주방은 물만 끓일 수 있고 와이파이 접속이 어려워 사용하지 못했다. 이곳에 다른 알베르게는 없었다.


샤워하고 마을로 나갔다. 시끌벅적했다. 순례자 외에도 관광객이 많이 찾아드는 유명 관광지였다. 기념품 가게 앞에서 ‘미스터 카미노’를 만났다. 그는 뽄페라다에서 발에 카미노 문신을 하고 나에게 자랑한 스페인 사내다.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리에 새긴 문신이 멋지다고 다시 추어주고 헤어졌다. 이곳 오세브레이로는 뽈보pulpo 요리가 특미라고 했다. 레스토랑으로 갔다. 순례자 메뉴를 주문하면서 뽈보를 추가했다. 뽈보는 삶은 문어를 작게 썰어 양념을 끼얹은 음식이다. 나무 접시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우성현이 의자에 올라서서 휴대폰으로 찍었다. 그 모습을 본 여주인이 달려왔다. 환한 표정으로 자기네 레스토랑의 뽈보가 최고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나라 요리 방식과 달랐지만, 맛이 좋았다. 가격이 14유로였다. 카미노에서 꽤 비싼 요리인데 우리 돈으로 18,000원이었다.


겔트족 전통 가옥 빠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