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DAY | 뽀르또마린 > 빨라스 데 레이

2025. 1. 21. 00:03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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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7.(수), 흐린 후 비.
25.2km(736.6km) / 5시간 43분




잠을 설친 탓인지 몸이 개운치 않았다.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고 종아리도 묵직했다. 이제 백 킬로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힘내자며 자신에게 속다짐을 놓았다. 호스텔에서 조식을 마쳤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에 걸음을 빨리했다. 또레스 강(미뇨 강의 지류) 위의 다리를 건넜다. 여명이 밝아 왔다. 분위기가 그윽했다. 여기저기서 순례자들이 나타났다. 같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이들이 많았다. 숲길로 접어들자, 카미노는 밀밭 사이의 오솔길로 변하더니 금방 다시 도로를 내놓았다.


세라믹 도자기 공장 끝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흙길로 접어들었다. 산불이 다녀갔나 보다. 쭉 뻗은 나무들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보기에 딱했다. 어디선가 뻐꾹새 울음이 들렸다. 한국에서 들었던 외로운 소리가 똑같다. 뻐꾹새는 고향이 아프리카다. 알을 낳으러 우리나라까지 오는 여름새다. 먼 길을 힘들게 날아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탁란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남하해 겨울을 보낸다. 그 먼 거리를 돌아가다 힘에 부쳐 죽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뻐꾹새 울음이 애절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철새들은 사람으로 치면 순례자쯤 될 것 같다.


흙길과 센다를 번갈아 걷다 짧은 숲길이라도 만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곤사르를 거쳐 가스뜨로마요르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오스삐딸 다 끄루스로 향하는 언덕은 지평선처럼 하늘만 보였다. 언덕 끝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땀방울을 씻어주었다. 자동차가 많이 달리는 위험한 도로를 건너 오스삐딸 다 끄루스에 도착했다. 정원이 예쁜 레스토랑 라브라도르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스페인의 대표 상징인 산티아고와 돈키호테, 산초 상을 입구에 세워두었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적힌 ‘78,1km 표석’이 여느 표지석보다 우람하다. 카미노에서 가장 큰 표석이다. 순례자의 낙서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소수점을 마침표로 하는데 여기는 쉼표였다. 처음에는 거리표를 보고 헛갈렸으나 이제는 눈에 익어 무덤덤해졌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가까워질수록 순례자가 많아졌다. 리공데 마을에서 자선 봉사단체가 모여든 순례자에게 기부금을 청했다. 대부분 순례자가 거절했다. 어디서든지 기부금은 얻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제부터 마을이 이어졌다. 에이레헤 마을의 너른 목초지는 푸른 호수와 같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풍경이었다. 젖소가 보였다. 초지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축사에 갇혀 지내는 가축에 비하면 저 녀석들의 보금자리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먹이조차 자연산이 아닌가. 이곳의 우유는 맛이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도 매한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지금 천국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시끄러운 나라 소식에 귀 막고 입 닫고 지내니 말이다.


뽀르또스 마을로 가는 산기슭에는 유칼립투스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리시아 카미노를 걸으면서부터 숲이 많아졌다. 갈리시아 지방의 나무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만들 때 사용됐을 정도로 빼어났다. 왕의 칙령(16세기)으로 허가 없이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참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19세기 들어 유칼립투스 나무가 스페인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나무가 참나무보다 성장이 빨라 건축 자재나 화목, 펄프로 사용하는 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후부터(1941년) 프랑코는 펄프 산업의 육성을 위해 참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더 많은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갈리시아 숲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유칼립투스 숲은 식물의 성장이 제한되고 동물이 거의 살지 못한다. 나무의 끈끈한 진액이 묻은 먹이가 새들의 목을 막아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숲 전체 생태계가 위험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칼립투스 숲에서 새소리를 듣지 못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기 마련인가 보다. 세상의 기본 법칙이다.


연속으로 오르내리는 센다를 따라 나타나는 경치를 즐기며 뽀레또스 마을에 도착하니 바르에서 우성현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정원에 거대한 개미 조형물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모형이 독창적이고 아이디어가 특별했다. 바르 입구에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는 맹인의 세요(스탬프)가 있었다. 기부금을 내야 한다기에 찍지 않았다. 비가 올까 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우성현은 행정○○부에서 정년퇴임한 공무원이었다. 카미노의 멋을 아는 친구였다. 그는 슬리퍼와 양말, 운동화, 소품 등을 배낭에 주렁주렁 매달고 지친 순례자의 모습으로 걷는 걸 좋아했다. 오늘은 마르지 않은 수건을 매달았다. 카미노에서는 빨랫감을 말리려는 흔한 모습이었다.


비가 오기 전에 빨라스 데 레이 마을에 몸을 들였다. 다양한 건물이 많아 마을이라기보다는 휴양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중심부의 가스뜨로 호스텔에 등록하고 빠에야paella 전문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몇 종류를 주문해 맛을 보았다. 빠에야는 쌀과 고기, 해산물, 채소를 넣고 만든 스페인 쌀 요리로 사프란saffron(크로크스 꽃의 향신료)이 들어가 특유의 노란색을 띠었다. 아랍 문명의 지배를 받던 중세 시대에 쌀이 스페인으로 유입되면서부터 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볶음밥 비슷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자 흩날리던 빗방울이 거센 비로 바뀌었다. 호스텔에 돌아와 손명락과 우성현은 하모니카를 불었다.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저녁에 빨라스 데 레이에서 소문난 뽈보 맛집에 갔다. 손님이 만원이었다. 기다리다 자리를 배정받아 요리와 술을 주문했다. 우성현을 포함해 다섯 명이 맥주 7잔, 와인 2병, 뽈보 2개, 빵과 오징어튀김, 야채 샐러드, 삶은 돼지고기 등을 푸짐하게 먹었다. 우리 돈 87,000원(67유로)이 들었다. 뒤늦게 정재형과 김○주, 김효겸, 최인규가 들어왔으나 좌석이 떨어져 합석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작고 소박한 맛집에는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늘부터 카미노에서는 검은 지붕이 사라지고 주홍색 지붕이 줄줄이 보였다.


자전거 순례자도 많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