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290)
-
성지순례를 하다 보니
어느 날 밤, 잠이 깼다. 문득 성지순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례 축복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냉담자가 된 나로서는 뜬금없었다. 마음을 다지고 성지순례에 나섰다. 가끔 집사람이나 친구가 동반하였지만 대부분 혼자 다녔다. 신심이나 교리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그것이 마음 편했다. 순례지에서는 책자에 적힌 기도문만 읽었다. 솔직히 기도할 줄도 모르고, 시간에 쫓기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들은 신자인 지인 두 부부[鄭ㅇ, 閔ㅇㅇ]도 용기를 내어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순례를 독려한 셈이었다. 계룡시에 사는 친구 부부는 독실한 신자다. 대전교구의 성지를 다녀오면서 찾아갔다. 내 처지를 잘 아는 부부이기에 순례지에서 나름대로 지키는 사항과 그렇지 못하는 일을 고백했다. 친구 부인이 "걱정하지 ..
2022.10.15 -
마음 사로 잡은 논골담길
2010년 묵호 등대마을에 논골담길이 만들어졌다. 공공 미술 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묵호를 재발견해 보자는 취지로 마을벽화 그리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마을을 거닐면서 벽화를 보니 그분들의 속마음은 그림이 아니라 따뜻한 대화가 그리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묵호항 수변공원 옥상에 주차했다. 무료였다. 큰길에서 시작하는 논골담길은 세 갈래였다. 어느 길로 가든 묵호등대에서 모두 만난다. 다른 길을 이용하면 등대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1길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3길, 2길 일부를 둘러봤다. 언덕 마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항구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골목 돌담길의 마음을 사로 잡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암시됐다. 마을에서는 장화와 지게가 필수품이었다...
2022.10.14 -
성지 순례는 진행 중
시원한 소나기 한줄기 퍼붓다 딱 그친다. 올 2월부터 시작해 전국 167곳 가톨릭 성지 가운데 102곳(61%)을 순례했다. 8월은 개인 사정으로, 9월은 추석이 끼여 하지 못했다. 시월 연휴(10.1.~3.)에 수원교구 관할 성지를 마쳤다. 책장(冊張)을 엄지로 좌르르 넘기면 파랗거나 빨간색으로 찍힌 스탬프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동안 열성껏 순례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가야 할 성지 65곳(39%). 그중 한 곳은 영남 알프스 간월산 죽림굴로 도로에서 3.5km 산을 올라야 한다. 가을이다. 단풍이 어깨 위로 뚝뚝 떨어지는 날 찾아가련다. 나머지 성지는 모두 북부 지역으로 당일치기가 어려우니, 1박 2일로 진행해야겠다. 내년 오월까지 마치려면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에도 기차를 타고 '서울 성지'를 오..
2022.10.04 -
'포항함 체험관'에 다녀오다
며칠 전 포항에 갔다. 생각보다 용무가 빨리 끝나 ‘포항함* 체험관’을 둘러보았다. 포항함은 2010.3.26.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같은 제원을 가진 초계함*이다. 퇴역 후 군함을 리모델링해 포항 동빈내항에 정박, 안보 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오후 두 시쯤, 체험관 앞 노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군함이 기차처럼 길었다. 먼저 뱃머리 쪽의 크게 쓰인 756 함정 번호가 눈에 띄었다. 군(軍)에서 많이 쓰는 각이 진 글씨체다. 순간, 잊고 지냈던 향수 어린 군 복무 시절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선상에 올라서자 수더분하게 나이 든 모습의 안내원 김태웅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1968년 해군에 입대해 해난구조대*에서 활약한 예비역으로 포항함 명예 함장을 역..
2022.09.28 -
월포 앞바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다. 물색과 하늘색이 파랗게 조화를 이루니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마음마저 시원하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이런 빛깔의 낙원이 아닐까. 바다는 낙(樂)으로 찾아가기도 하지만, 쓸쓸하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도 문득 바다를 떠올린다. 망망대해를 마주하면 내 마음을 다 받아 줄 것 같다. 그래서 '바다'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맑은 날, 이런 가을날, 수평선을 무심히 바라보면 몸과 마음의 평화가 찾아든다.
2022.09.26 -
그곳에 가고 싶다
어저께는 일본 정부가 10월부터 자유 여행 허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여행객 예약이 800%나 엄청나게 늘어났고 항공사들도 노선 증편을 예정하고 있다. 신문 기사를 읽으며 나도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2018.10월, 지인들과 규슈 올레를 보름 정도 다녀왔다. 규슈 올레는 제주올레에 자문받아 똑같은 모델로 만들어졌다. 다만 제주올레가 섬을 한 바퀴 돌도록 이어진 길이라면 규슈 올레는 지역을 기준으로 한 코스씩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2주 동안 8개 올레길과 히코산(1,200m) 한 곳을 산행하였는데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하루 30km 이상 걸으면서 생경한 풍경을 즐기며 뜻있게 보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 사람들의 친절이라는..
2022.09.24 -
송해 기념관
지난 6월 8일 향년 95세로 별세하신 송해 선생님.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여 국민 MC로 존경받았다. 80년대 중반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대구시민의 날 기념 전국노래자랑대회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큰 행사에 잡상인이 몰려 장사진을 쳤다. 장내 질서를 위해 경찰 기동대가 동원(버스 2대)되어 야구장 밖으로 나갈 것을 종용했는데 한대도 내보내지 못했다. 행사 시작 5분 전, 송해 선생님이 무대에 나오셨다.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시작하니 상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주시오'라고 한 번 소리치자 마치 약속한 것처럼 모두 빠져나갔다. 그때의 놀라운 광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외손자를 데리고 송해기념관에 갔다. 이상 기온으로 무척 덥고 햇볕이 따가웠다. 그래도 아이는 신이 나 땀이 송송나도록 뛰어다녔..
2022.09.17 -
아빠를 찾아주세요
추석 연휴에 사위와 딸, 외손자가 친구 가족들과 제주도로 여행 갔다. 호텔에서 첫 밤을 맞았다. 딸 내외와 친구 부부는 서로의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아이를 재우고 편하게 레스토랑에서 만난 어른들은 와인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음료를 마시던 사위는 아이가 걱정돼 잠시 객실로 갔다. 쿨쿨 자고 있어야 할 아이가 없다. 앞이 깜깜했다. 허둥지둥 화장실을 살펴봐도 없었다.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사위는 놀란 황소 눈이 되어 구석구석 살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아이 잠옷이 침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아이가 옷을 갈아입고 심야에 방을 나간 것이다. 비상 상황이다. 어쩔 줄 몰라 부부가 아이를 찾느라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
2022.09.14 -
용천사 부도군을 보고
청도 용천사* 뒷산에 석종형 부도가 6기 있다. 5기의 주인공은 17~18세기 중창 당시의 고승들로 대허(大虛), 회진(會眞), 청심당(淸心堂), 우운당(友雲堂), 사송당(四松堂)이며, 용천사 쪽으로 백여m 떨어진 곳에 백련당(白蓮堂) 부도가 홀로 서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멀리서 보니 부도가 스님이 가부좌한 뒷모습 같아 보였다. 부도(浮屠)는 존경의 마음이 담긴 석조물이다. 선문의 제자들이 그들의 조사(祖師)를 숭앙해 입적 뒤에 추앙하려고 남긴 장골처(藏骨處)이기 때문이다. 조성 당시의 분위기는 알 수 없으나, 부도군이 사찰과 멀리 떨어져 있어 지금은 찾는 사람이 드물다. 봄에 경주 서악리고분군을 다녀왔다. 무열왕릉 위쪽에 왕릉으로 추정하는 능이 네 기 있었다. 규모가 무열왕릉과 ..
2022.08.29 -
우중의 동호회 번개
동호회 번개 날에 하필 아침부터 비가 왔다. 단비인가, 번개 날짜를 연기하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후 한 시, 추적추적 비가 오는데 우산을 받쳐 들고 나오신 선생님들. 차량 세 대로 나누어 타고 영천으로 향했다. 먼저, 에 갔다. 광주이씨 시조 이당 묘와 영천최씨 사이에 얽힌 설화를 회장님에게 들었다. 1368년(공민왕 17) 이집이 신돈을 탄핵하려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아버지(唐)와 함께 경상도 영천으로 도망쳐와 친구인 최원도(전직 사간)의 집 다락에 숨어 살았다. 최원도의 몸종 제비가 이 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상전의 비밀을 지키려고 자결하였다. 이듬해 이집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최원도는 자신이 묻히고자 잡아 놓은 어머니(영천이씨) 산소 아래 장사지냈다. 광주이씨는 이곳에 시조를 모신 음덕..
20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