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9. 07:21ㆍ입맛
총각 시절, 점심 단골집 주인이 쌈을 잘 먹는 나를 보고 "총각은 장가가면 첫딸 났겠다"는 덕담을 자주 했다. 그런 속담이 있는지, 말이 씨가 됐는지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쌈을 먹을 때 호박잎은 된장을 빡빡하게 끓이고 양배추는 양념한 간장이 제격이다. 고기를 싸 먹으면 된장 위에 생마늘 하나쯤 올려 먹는다. 고기가 없으면 된장을 많이 발라 쌈 싼다. 아직 변함없이 쌈을 좋아해 집에서 즐겨 먹는다.
지인들과 <웰빙황토우렁이쌈밥>을 먹으러 갔다. 한적한데 위치해 내비게이션을 맞추어 도착하니 널찍한 주차장이 만차 수준이다. 건물 간판은 상호를 줄여 <황우쌈>을 붙여 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루 이백 그릇만 한정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고 그 아래 손 씻는 개수대가 세 개다. 쌈 싸 먹으려면 일 번이 손부터 깨끗이 씻어야 한다. 홀 가운데에 쌈 채소 진열대가 있고 주위로 4인용 탁자가 빠듯하게 놓였다. 좌석이 다 차면 백 명은 되겠다. 빈 좌석이 몇 곳 없어 창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데이블 메뉴판이 있었지만,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세트(16,000원)를 추천했다. 공깃밥, 오이 멧국, 기본 반찬 7가지에 18가지 야채와 우렁이쌈장, 우렁이 무침회, 제육볶음이 나오는 거였다. 야채는 홀 진열대에서 셀프로 무한 리필 가져다 먹는다.
쌈을 좋아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추, 알 배추, 깻잎, 청경채, 시크리, 적근대, 당귀, 양배추, 케일, 고추 등 풍성한 야채들이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깨끗하고 저마다 독특한 향이 났다. 호사가처럼 먹었다. 집에서 한 종류로 싸 먹다가 여러 가지 쌈을 한 데 포개 싸 먹으니, 쌈 맛이 풍부했다. 쌈을 싸는 데 꼭 필요한 우렁이쌈장은 현미, 찹쌀, 보리쌀, 콩, 조선된장 등 12가지 곡물을 더하여 3시간 이상 끓인 후 하루 숙성했다고 한다. 빡빡한 강된장에 우렁이 첨가된 맛있는 쌈장이었는데 양이 약간 모자라 마지막 몇 쌈은 일반 된장으로 쌌다. 확실히 맛에 차이가 났다. 우렁이 무침회도 그냥 먹기보다 쌈장 대신 얹어 먹었다. 아삭하고 상큼한 식감이 쌈장을 대신할 만큼 입맛을 사로잡았다. 제육볶음은 쌈의 감초다. 간이 슬쩍 배 쌈에 기본으로 얹었다. 제육이 없다면 쌈이 싱거울 수밖에 없다. 천천히 볼이 터지도록 입에 넣었다. 쌈을 세 번이나 진열대에서 가져와야 했다. 우걱우걱 씹는 동안 함께 먹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202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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