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복자부산할매낙지에서

2024. 7. 14. 15:09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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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일하는 雲川이가 휴가를 나왔다. 오락가락하던 장맛비가 갑자기 끝장을 낼 것처럼 퍼부어댄다. 친구 여섯이 놋날을 드리듯 거세게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손복자부산할매낙지> 집에 모였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 밑에 빈 그릇을 대며 "이음새를 보수했는데도 비가 오면 샌다"라는 종업원 말이 부글부글거렸지만, 우리는 보글보글 끓는 얼큰한 낙지전골 냄비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음식이 만남이고 소통이라 했던가.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한마디에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소맥을 부딪히며 꼭꼭 봉해두었던 늘그막 우정을 풀었다.  

근래 들어 이곳에서 두 달에 한 번은 고교 동기 모임을 가진다. 낙지는 맛있고 건강에 좋으며 비용도 적당하다는 총무 제안에 두말없이 장소를 정했다. 낙지 요리가 살짝 매우면서 들쩍지근해 술안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낙지를 먹으면 서해안에서 군 복무할 때가 떠오른다. 간조가 되면 가끔 삽을 들고 갯벌에 들어갔다. 낙지 구멍을 찾아 빠르게 삽질해 깊이 숨어 있는 낙지를 잡아낸다. 뻘밭에서는 비호처럼 날랜 낙지를 놓치기 일쑤였지만 가끔은 무장해제 된 낙지를 잡기도 했다. 잡은 낙지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탕탕이'를 만들어 소금장에 찍어 먹었다.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 낙지는 그 시절 별미였다.   
낙지는 수명이 일 년 반쯤 되고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산다. 여덟 개 다리 중의 빨판이 없고 뭉뚝하게 보이는 짧은 다리가 생식기다. 수컷은 교미 후 죽고 암컷은 갯벌 굴에서 알이 부화할 때까지 보호하다 죽는다. 부화한 새끼는 처음에는 어미의 살을 먹고 생존하다가 커가면서 스스로 먹이를 구한다. 새끼들에게 제 몸을 내어주는 어미의 삶이 신비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그들의 세계에 경의를 표하지만, 막상 낙지 요리 앞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마음이 사라진다.  

이제 우리도 한두 군데 고장 난 몸을 보듬고 있지만 잘라 놓아도 꿈틀꿈틀하는 낙지처럼 아직은 살아 있다. 밤새 달려 보자는 패기도 젊었을 때 말이다. 이제는 낙지의 빨판처럼 오래도록 붙어서 얼굴 보며 살아가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오늘은 여덟 명이 모이기로 했지만, 두 명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여덟 개의 낙지 다리처럼 다 모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우리는 육지로 올라온 낙지가 되어 바닷물 같은 빗속을 헤엄쳐 하나둘 사라졌다. (2024.7.12.) 

서구 달구벌대로 1789 (내당동)
갑자기 장대비가 무섭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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