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6. 09:49ㆍ입맛
대프리카 별칭답게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린다. 선풍기로 버티다가 오늘부터 에어컨을 켰다. 시원하다. 진작 켤 건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었다. 거실이 으스스해지니 집사람이 속까지 시원하도록 냉면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러겠다고, 밖을 나서니 후텁지근한 열기가 뜨뜻한 목욕탕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지하철을 타고 며칠 전에 들렸던 <대구 골목냉면> 집에 갔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홀이 한산하다. 테이블에 찬물 병과 종이컵, 식초와 겨자 통이 아담하게 놓였다. 그 때문에 종업원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식당은 인건비를 절감해야 생존할 수 있는 업소다. 한산했지만, 배달원은 쉼 없이 들락날락한다.
테이블 키오스크로 물냉면 만두 세트를 주문하고 온육수를 셀프했다. 느긋이 마시고 나니, 물냉면이 놋그릇에 담겨 나왔다. 살얼음이 끼여 매우 차가워 보였고 고명으로 오이, 무, 열무김치. 삶은 계란 반 개를 얹었고 통깨가 뿌려졌다. 밑반찬 없이 가위가 서빙됐다. 놋그릇에 손바닥을 대보니 찬 기운이 상그랗다. 식초와 겨자를 넣은 후 면을 가위로 한 번만 잘랐다. 고명과 다대기, 면을 고루 섞으니 밑반찬이 없어도 될 만큼 고명이 알차다. 면을 한 젓가락 맛보니 조금 언 부분이 있어 씹히는 맛이 뻑뻑했지만, 천천히 먹는 동안 사르르 풀렸다. 그러는 동안 만두가 나왔다. 군만두 네 개, 찐만두 다섯 개다. 한입에 넣기에는 만두가 조금 커 베어먹는다. 따끈한 만두가 차가워진 입안을 부드럽게 녹여준다. 냉면과 어울리는 조합이다. 면을 먹는 동안 살얼음 육수가 다 녹았다. 몇 숟가락 떠먹으니 살얼음이 녹았어도 얼얼하다. 냉면은 당연히 차가워야 참맛이 느껴진다. 식당을 나오면서 집사람이 냉면 맛이 좋았다고 말했다. 인사였지만 으쓱했다. 이 집은 명태회 냉면이 전문인데, 집사람 추천에 보통을 먹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드는데 다음엔 명태회 냉면도 대접해야겠다.
냉면은 냉장 기술이 진전하기 전에는 겨울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사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렌차이즈 식당이 늘면서 함경도식 함흥냉면(비빔냉면)과 평안도식 평양냉면(물냉면)이라는 구분도 사라져가는 것 같다. 겉모양대로 물냉면, 비빔냉면으로 통한다. 하기야 냉면조차 인스턴트 식품으로 나오니 옛 이름을 끌어 쓰기가 쉽지 않겠다. 시대는 점점 심플해지고, 실속형으로 바뀌고 있다. 무릇 냉면 맛도, 멋도 변화 중이다. (20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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