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5. 10:37ㆍ입맛
서울에서 친구가 왔다. 반월당역에서 만나 인근의 <삼삼구이초밥>에 갔다. 초저녁인데 홀과 방안에 손님이 가득했다. 같은 장소에서 이십 년 넘게 성황을 이루니 괜찮은 집이다. 밑반찬이 깔끔하고 먹을 만한 데다 주문한 음식도 푸짐하게 나오니 인기가 높다. 한때는 자주 다녔는데 손님이 많다 보니 시끌벅적해 요즘은 뜸하게 가는 편이다.
우리는 자리를 bar로 안내받았다. 피크 타임에 4인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보다 편하지만, 가끔 주방장 서비스를 즐기려는 사람도 앉는다고 한다. 모둠회 소짜(60,000원)를 주문했다. 먼저 쓰키다시가 나왔는데 생선회, 무침회, 튀김 등 과할 정도로 나왔다. 곁들이 안주만으로도 소주를 마실 수 있겠다. 회가 나왔다. 접시에 가녀린 산양산삼 두 뿌리가 장식으로 얹혔다. 소주를 몇 병 먹는 동안 안주가 많아 회는 반도 먹지 못했다. 돈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안주 양을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식당을 나오면서 출입구 에어컨 위에 사슴뿔이 달린 일본 장수 투구가 보였다. 영화에서 본 듯한 것이었다. 천장 벽에서 潮呑百川(조탄백천)라고 쓴 액자도 눈에 띄었다. 걸어 놓은 지 오래됐는데 그동안 보지 못하고 왕래했나 보다. 潮呑百川은 조수가 백 개의 하천을 삼킨다는 뜻으로 송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오초려(吳草廬, 1249~1333)가 주자의 학문을 찬양한 詩의 한 구절이다. 이것을 보니 문득 며칠 전 창덕궁 후원 존덕정에서 본 정조의 나무판,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가 떠올랐다. 만 개의 개울에 비추는 달이 하나인 것처럼 임금은 하나라는 의미와 조탄백천의 뜻이 별반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소주 한잔하는 덕분에 친구와 더불어 좋은 글귀를 새겼다. (202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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