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6. 09:44ㆍ입맛
<길선(吉仙)>은 세월 먹은 횟집이다. 월급쟁이 할 때도 다녔으니 아마 이십여 년은 훨씬 넘었을 것 같다. 반 양옥 주택의 담장을 헐고 영업장으로 개조해 좌식 테이블을 비치해 장사했는데 -저녁에는 가보지 않았으나- 점심 손님이 상당수였다. 그때도 회덮밥, 회 초밥, 물회가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얼음 그릇에 담아 나오는 여름철 물회 맛은 오싹함 그 자체였다. 손님이 많을 때는 좁은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이 뒤죽박죽되곤 했었다. 구두를 반짝반짝 닦았을 때는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십여 년 전 직장을 은퇴하고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인들과 우연히 점심 먹으러 갔다.
장소는 그때와 같았으나 옛집은 사라지고 새뜻한 이층 하얀집으로 새로 지었다. 주차 공간도 넓혔다. 일 층에는 넓은 주방과 여남은 입식 테이블을 갖춘 홀이고 이 층은 -올라가 보지 않았지만- 단체석이다. 화장실도 깨끗해 예전 영업장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새집을 지은 지는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았다. 일류 요리사인 사장님이 직접 손님을 맞아주고 서빙 종업원이 다섯 명이나 됐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재빠르게 음식이 나왔다. 의아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허허 웃었다. 회덮밥이 점심 특선이었다. 모든 테이블에서 회덮밥만 먹고 있었다. 손님이 나가면 자리가 바로 채워지곤 했다.
두 사람 앞에 초장 하나와 매운탕 하나, 밑반찬으로 길게 썬 무김치와 약간의 다시마와 데친 오징어가 나왔다. 맑은 조개탕이 몫몫으로 놓였다. 빨간 초장은 때깔이 좋았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맵지 않고 달지 않은 은근한 맛이다. 회덮밥에 섞어 천천히 비볐다. 밥이 많은 것 같아 반을 들어냈다. 초장과 생선 살, 야채, 쌀밥이 서로 어울려 입맛을 돋웠다. 서 있던 종업원들이 테이블을 살펴보고 밑반찬을 더 갖다주었다. 매운탕 국물이 하도 시원해 따로 나온 맑은 조개탕은 식후 음용수로 마셨다. 초장 맛이 진백이여서 덜어낸 밥을 남은 초장에 비벼 다 먹었다. 덧붙이면 살기 위해 먹던 밥이 늘그막이 되니 이제는 즐기려고 먹는 것이 됐다. (2024.4.4.)
- 영업시간 : 매일 11:30~22:00
- 휴게시간 : 매일 15: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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