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 식당의 영화 포스터

2024. 1. 8. 00:17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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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빨리 난다는 새, '어느새'가 신년 전갈을 물고 왔다. 친구의 "정담을 나누자"는 통신문이었다. 지난 연말에는 仁山이, 새해엔 香仁이 주선하니 이름에 어질 仁 자가 든 친구가 너그럽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여남은 친구들이 진골목의 백록 식당에 모였다. 진골목은 긴 골목의 방언이지만 진짜 보배[珍] 같은 부호들이 모여 살았던 골목이기도 하다. 백록은 털 빛깔이 흰 사슴이다. 밥집 상호로 어울리지 않는 듯싶으니, 과거의 영화(榮華)가 숨겨져 있을 법하다. 그래설까 옛날 영화(映畫) 포스터로 실내를 장식해 은밀히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포스터는 은막의 스타들을 진짜 별처럼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포스터가 장식된 방에 둘러앉아 잠시나마 배우들의 옛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백록의 고객 대부분은 늙은젊은이들이다. 여주인과 종업원도 또래다. 상차림은 주방에서 내주는 대로 차리니 때마다 음식이 비슷하나 같지는 않다. 오늘은 잡채가 없어도 찬이 모자란다 싶어도 그만이다. -나이가 들면 청각 기능이 저하돼 자연히 소리가 커진다- 시끄럽게 큰 소리로 말해도 뭐라 않으니, 장년들의 맞춤 집이나 다름 없었다. 반주 몇 잔에 알근해지자 자리를 파하고 길 건너 미도 다방으로 건너가 쌍화차로 대미를 장식했다. 진골목에서 식사하면 거치는 통과 의례이다.
갑진년 새해 香仁과 친구들, 늘 건강하고 초대박 나시라. (2024.1.4.)

백록 식당 대문. 용 자가 멋지다.
방마다 영화 포스터가 장식돼 있다.
빈방의 포스터는 찍었으나 손님 있는 곳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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