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9. 00:43ㆍ입맛
1월 1일 친구가 둘이서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흔쾌히 OK 했다. 새해에도 술 복이 있다고 느끼며 약속 장소인 동아쇼핑에 도착했더니 십 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서성거리다가 외벽의 미셸바이탠디 광고에 눈길이 갔다. 남성 모델이 빨간 가죽 신발을 신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모습이었다.
광고 사진에서 두 곳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왼발을 오른발에 넘겨 놓은 것과 세운 무릎의 둔 손의 위치였다. 일반인은 한 발을 옆으로 잘 넘기지 않고, 세운 무릎 위에 팔을 얹기에 무릎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모델 자세가 임펙트해 프로는 역시 다르다고 생각하는 동안 친구가 왔다.
인근 염매시장 안 골목의 '소문난 놀부 돼지국밥' 식당으로 갔다. 외양과 달리 들어가니 의외로 깔끔했다. 자세히 보니 고기를 직접 삶아 내는 식당이 아니었다. 벽면에는 메뉴판과 부모와 자식이라는 시조 형식의 게시글만 붙어 있어 국밥집답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갈까 싶었으나 새해 첫날이라 구석 자리 한 곳에 앉았다. 잠시 뒤 뚝배기 접시에 주문한 삼겹살 수육에 암뽕과 순대 몇 개가 얹혀 나왔다. 2024년 새 잔을 친구와 부딪혔다.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짜르르 내려갔다.
밥이든 술이든 먹는 데는 대개 감각의 맛과 정서의 맛, 두 가지가 있다. 감각은 삼겹살 수육의 기름진 맛과 고소한 암뽕, 구수한 순대가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이고 정서의 맛은 함께 먹는 사람, 종사자의 태도, 좌석 분위기 등이다. 두 가지가 맞아떨어지면 금상첨화다. 부득이 하나를 집는다면 나는 정서의 맛을 우선으로 친다.
둘의 얼굴을 붉게 만든 친구는 젊은 시절 천주교에 귀의해 독실한 신자가 되어 봉사 활동을 즐겨 해 왔다. 은퇴 후에도 봉사에 헌신하느라 얼굴 보는 게 쉽지 않다. 새해 첫날 우 베라노를 만난 것은 영광이다. 아마도 정서 맛의 이면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사랑이리라 믿는다. (2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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