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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성의 필수품, 갓
국립대구박물관 복식문화실에서 한복의 장식품으로 이 소개돼 있었다. 어릴 때는 많이 봤는데 늘그막인 지금은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할아버지와 고향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에 관해 국립대구박물관의 해설 자료를 발췌, 요약했다.'갓'은 일반직으로 챙(차양)이 있는 모든 모자를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조선시대 남성의 흑립을 의미한다. 갓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일 만큼 역사가 오래된 모자다. 시대가 흐르면서 갓의 형태, 재료, 제작법이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갓은 양반과 평민의 모든 계층이 격식을 갖추어 외출할 때 반드시 착용하는 모자였다. 유행에도 민감해 시기에 따라 갓의 크기가 달라졌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갓의 모정은 높고 좁아졌으며, 갓의 챙은 어깨를 덮을 정도로 ..
2025.04.12 -
한복 전시실을 보고
* 국립대구박물관 해설(요약)한복(韓服)은 우리나라 전통복식이다. '한복'의 명칭은 20세기 초 대한제국 시기의 신문 기사에 처음 등장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서양의 양복(洋服)과 구분하기 위해 '조선의복'으로 사용했다. 1950년대 이후 한복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전통 복식을 의미하는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조선, 대한제국을 거쳐 고유한 복식 문화 틀이 갖추어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양장이 유입된 이후에도 한복은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웃이었다. 현재 K-팝과 드라마의 성공으로 국내외 한복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이제 한복은 전통을 넘어 창작자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고 새로운 패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탐방 노트: 국립대구박물관에 상설 전시 중인 을 관람했다. 섬유 도..
2025.04.11 -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국보* 국가유산청 해설탑리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塼塔) 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 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
2025.04.10 -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근황
국립대구박물관의 (보물)가 당초 배치돼 있었던 (보물)을 만나러 갔다. 차로 100km를 달려가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자, 지난 3월 22일 발생한 산불 흔적이 역력했다. 산마루가 새까만 것이 산불이 능선을 타고 뻗어 나간 것이 확연해 보였다. 단촌면 관덕1리 마을에 들어서니, 주택가에 불이 튀어 불탄 집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온 동네가 다 탈 뻔했다. 보는 내가 섬찟한데 화재를 직접 당한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됐다. 동네를 관통해 삼층 석탑이 있는 산기슭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아직도 메케한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앞뒤 옆 산을 화마가 휩쓸고 갔다. 석탑이 100m 앞이라는 이정표가 키다리처럼 서 있다. 기슭에 올라서자 멀리 탑이 보였다. 미라처럼 하얀 방염포에 싸여 있다. 다가..
2025.04.09 -
의성 관덕동 석사자(보물)
* 의성 관덕동 석사자 - 보물* 소재지: 국립대구박물관* 국가유산청 해설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의 기단 윗면에 배치되어 있던 네 마리의 사자상 가운데 남아있는 사자상 2구이다. 한 쌍은 1940년에 분실되었고 나머지 한 쌍만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구 모두 조각 수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닳아 있다. 암사자는 앞발을 곧게 세우고 뒷발은 구부린 자세로 앉아 있다. 얼굴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굵은 목에는 구슬 목걸이가 남아 있어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장식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 밑에 세 마리의 새끼 사자가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어미젖을 빨고 있는 희귀한 모습이다. 수사자는 암사자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며,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향하고 있어 암수가 ..
2025.04.08 -
대구 노변동 사직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 社(사)와 곡물의 신, 稷(직)에 제사 지내는 제단(壇)을 의미한다. 고대부터 왕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직접 사직단에서 국가의 번영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가장 중요한 전통적인 의식의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역사적, 문화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은 조선시대 지방 사직단 중의 하나인 옛 경산현의 사직단이다. 25년 전 시지택지개발지구의 도로를 개설하면서 사직단과 삼국시대의 고분이 대규모로 발굴됐다. 그때 고분군에서 유물 만여 점까지 출토됐다. 현재 사직단이 자리 잡은 언덕 아래, 고분군의 돌덧널무덤이 표본으로 유리막 안에 전시돼 있었다. 2006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발굴, 복원한 사직단을 대구시 기념물로 지정했다. 수성구청에서는 매년 사직대제(..
2025.04.07 -
금동 당간 용두(보물)
* 금동 당간 용두 - 보물* 소재지: 국립대구박물관* 국가유산청 해설경북 풍기에서 발견된 이 용두는 보당(寶幢)에 번(幡)을 매달 때 줄을 거는 역할과 당간 꼭대기에 올려 장식하였던 장치이다. 금동의 역동적인 용이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여의주 뒤로 줄을 거는 도르래가 장착되었다. 용은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였으며 얼굴 주위와 목 뒤로 굽이친 듯 갈기가 장식되었다. 목에는 비늘이 선각되고 전체적으로 화려하게 도금되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사찰에 쓰여진 보당의 형식과 그 위에 올려진 용두장식이 실제로 밝혀진 중요한 자료이며 통일신라 전성기의 금속공예 기술이 잘 발휘된 걸작이다.* 관람 노트: 시간이 나면 가끔 대구박물관을 간다. 오늘은 정문 계단을 밟으면서, 높다란 깃대(짐대) 끝의..
2025.04.06 -
동대구역 광장 동상
KTX를 타려고 동대구역에 갔다가 광장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봤다. 밀짚모자를 쓰고 볏단을 한아름 들고 서서 활짝 웃는 모습이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았다. 동상 받침대에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라는 눈에 익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동상은 지난해 12월 대구시에서 세웠다. 누가 뭐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였다. ◇제1, 2, 3대 이승만1대 1948.7.24.~1952.8.14.2대 1952.8.15.~1956.8.14.3대 1956.8.15.~1960.4.27. 궐위◇권한대행 허정 1960.4.27.~ 6.15.◇권한대행 곽상훈 1960.6.15.~6.23.◇권한대행 허정 1960.6.23.~ 8.8.◇권한대행 백낙준 1960...
2025.04.05 -
반곡지의 봄
매화 지자 황금 꾀꼬리 수양버들에 날고작은 연못의 물빛은 이끼보다 푸르다봄 시름과 봄 흥취 중 어느 편이 더 클까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아직 안 피었는데ㅡ봄날 / 서거정(1420~1488)날씨 좋아 꽃을 찾아 사수가에 나오니끝없는 봄 풍경이 일시에 새롭다네무심코 봄바람 얼굴에 느끼니울긋불긋 수많은 꽃 모두가 봄이로다ㅡ봄날 / 주희(1130~1200)하루 종일 봄을 찾아도 봄은 보이지 않고지팡이 짚고 멀리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돌아와 매화 가지 끝을 잡고 보았더니봄은 이미 가지 끝에 성큼 와 있었네ㅡ봄을 찾아서 / 대익(생몰 미상)반곡지(盤谷池)는 1903년 조성한 면적 5ha(15,000평) 농업용 저수지로 150여m 못 둑에 백 년 넘은 왕버들 이십여 그루가 장관이다. 반곡지의 옛 이름은 외반지였다...
2025.04.04 -
에밀 타케 신부와 성 유스티노 신학교
에밀 타케 신부는 1898년 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1952년 선종한 뒤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잠들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를 본 후 1922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30년간 재직한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갔다. 학교는 지척에 있었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 신학대학 유스티노 캠퍼스였다. 건물 외형은 처음의 'ㅡㄷ' 자형에서 양쪽 날개가 철거되어 'ㅡㅣ' 자형이 됐다. 내부 1층은 성당과 유스티노홀과 옴니아홀, 2층은 드망즈홀과 앗숨홀이었다. 4개 홀은 창고처럼 보였다. 행사용 각종 자재와 종(鍾), 모관, 의류, 그림 등이 전시 보관돼 있었다. 1층 성당은 넓지 않았으나, 대부분 성당의 좌석은 가로로 놓여 있는 데 비해 성유스티노 성당은 중앙 통로를 넓게 틔우고 장의자를 세로로 배치한 점이 특이..
202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