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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네거리 '상동 은행나무'
찬바람이 소슬하게 짙어가는 범어네거리, 도시철도 범어역 5번 출구에 아직도 푸른 잎을 고스란히 매단 은행나무를 보았다. 작은 나무들은 노란 단풍을 흩날리는데 거목만은 꿋꿋한 자태다. 은행 앞에 사연이 새겨진 두 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은행나무는 조선 세조 14년(1468년) 상동 들판에 심어져 오랜 세월 거목으로 자랐다. 1981년 도로 확장 공사로 인근 정화여고 교정으로 옮겨졌다가 학교가 이전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는 바람에 2001년 현 위치로 옮겨왔다"는 내용이었다. 노거수를 보존하려는 지역민들의 애향심이 뒷받침됐다. 은행나무를 찬찬히 올려봤다. 긴 세월 탓인지 쩍쩍 갈라진 몸체가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무성한 잎을 매단 모습은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가 없으니 ..
00:31:36 -
금강 자연산 매운탕
내당네거리 한자리에서 수십 년간 매운탕 장사를 하는 집에 갔다. 워낙 오랜만에 갔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신발 벗고 들어간 방이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고, 헌 좌식 테이블이 새 입식으로 바뀌었다. 허술했던 시설이 한결 깔끔해졌다. 예전 그대로인 벽에 붙은 거북이 박제와 사장님 낚시 사진이 오래된 내력을 말없이 알려주는 듯했다. 식사 메뉴는 매운탕은 쏘가리, 잡어, 메기가 있었다. 잡어 아래 여백에 꺽지, 빠가사리, 뿌구리, 모래무지, 마자가 조그만 글씨로 쓰여 있었다. 잡어 종류를 적은 것이지만, 정겨운 우리말이 어릴 때 냇가에서 발을 둥둥 걷고, 모래무지를 잡아 고무신에 넣고 놀던 때가 떠올랐다. 꺽지라도 잡으면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 성인이 되고부터는 접하기 어려운 이름들이었다...
2024.11.20 -
대정옥 한우 국밥
국밥 하면 따로국밥이다. 밥 따로 국 따로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구 십미의 하나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지금도 영 없진 않으나- 국에 밥이 말아져 나오는 국밥이 대부분이었다. 이름 대로 보면 그것이 진짜 국밥이다. 따로국밥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언젠가부터 국밥은 팔다 남은 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불신이 확산해서 국과 밥이 따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도 국과 밥을 따로 주문해 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은 따로국밥 집이 아니라도 어느 업소에 가든지 '국밥' 하면 국과 밥이 따로 나온다.친구와 점심 먹으러 도시철도 대구은행역에서 범어역 중간쯤 있는 에 갔다. 국밥집치고는 격이 있어, 지인들과 가끔 이용한다. 메뉴가 국밥 외에도 곰탕, 냉면과 곁들이로 육회, 떡갈비 등 다양했다. ..
2024.11.19 -
연남물갈비 지산점
친구와 현재 대구에서는 한 집뿐이라는 지산점에 점심 먹으러 갔다. 홀에 '대한민국 No.1 물갈비 전문점' 고딕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테이블마다 물갈비 메뉴와 이색적 비법을 아크릴판에 찍어 붙여 놓았다. 물갈비 이름은 생소하지만, 포스터의 화려한 사진들이 먹성을 자극했다. 소 물갈비 3인분을 주문했다. 철판에 산봉우리처럼 쌓은 음식이 나왔다. 보기에 소고기의 때깔이 곱고 양이 많아 보였다. 음식 가운데 꼽힌 태극기 깃발이 인상적이다. 버너를 켜는 젊은 사장님에게 물갈비가 생소하다고 말했더니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 준다. 물갈비 원조는 전주로 돼지고기를 이용하는데, 천안에서 소고기로 개발한 것이라면서 음식을 쌓은 봉우리는 독도를 상징한다고 했다. 깃발은 깃대의 철 막대가 열전도율을 높여 빠르고 고르게 익혀..
2024.11.18 -
사과 한 상자
사과가 📦 택배로 왔다. ○우회에서 보냈다. 회원들에게 일 년에 두 번 사과를 보내온다. 각자가 낸 회비로 구입하는 것이지만, 뜻밖의 선물 같아 기분이 좋다. 그동안 사과값이 비싸 몇 개씩 사서 먹다 상자째 받으니 집사람이 억세게 좋아한다. 사과는 퇴직하고 평광동 골짝에서 과수원 농사 짓는 회원에게 주문해 택배 받는다. 🍎 맛이 달고 상큼하다. 집사람이 때마침 놀러 온 자녀에게 봉지에 몇 개씩 담아 쥐여주는 손길이 다사롭다. 늘그막에 모임을 유지하니 행복하다. 한창때는 이런저런 모임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다. 퇴직하고 나면 만남이 뜸해지다가 시나브로 연락마저 끊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몇 개의 모임이 유지돼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젊을 때는 모임의 분위기가..
2024.11.17 -
짬뽕 지존 범어점
지인이 별스러운 짬뽕이 있다면서 소개했다. 범어역 1번 출구에서 지척인 범어 N타워 2층에 위치한 이었다. 홀이 넓고 깨끗했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저녁 치고는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다. 지존 짬뽕과 쌀국수 짬뽕, 짬짜면 등 메뉴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테이블 키오스크로 수제비 짬뽕, 순두부 짬뽕밥, 찹쌀 탕수육, 갈비 만두를 주문했다. 탕수육이 먼저 나왔다. 찹쌀이어선지 하얗고 오징어튀김처럼 길다. 양파를 채 쳐서 고명으로 올려놓았다. 접시 여백에 부어진 새콤, 달싹한 탕수 소스가 꿀처럼 보인다. 찍먹 전용이었다. 탕수육에 양파를 곁들이니 식감이 깔끔했다. 소짜가 세 사람에게 적당했다. 탕수육을 먹고 나니 벌건 국물이 그득한 수제비 짬뽕과 순두부 짬뽕밥이 나왔다. 메뉴 이름 그대로 짬뽕 국물 ..
2024.11.16 -
국수 사랑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회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 중에서 - 지인에게 마른국수 4kg을 얻었다. 자기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선물 받은 국수를 나누어 주었다. 국수를 끼니로 때우기도 하지만 출출할 때 간식거리나 별미로도 적당하다. 예전부터 면은 장수식품이라 해서 생일날과 잔칫날 즐겨 먹는다. 얻어온 국수로 집에 사 놓은 짜장 소스를 볶아 짜장 국수를 만들었다. 물에서 금방 건져낸 국수는 담백하고 시원해 좋았고, 짜장은 달달하고 감칠맛이 났다. 단무지가 없어도 어릴 때 좋아한 짜장면 맛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집에서 국수를 삶아 쇠고깃국이나 추어탕에 말아 먹고, 된장찌개나 다른 찌개류에도 풀어 먹는다. 김치를 볶아 섞어 먹기도 하니 국수 사랑이 어지간하다..
2024.11.15 -
낙엽 / R. 구르몽
깊어지는 가을, 슬픈 음악처럼 나뭇잎이 진다. 아침 출근길 횡단보도를 건너면 제법 구르는 소리를 내던 갈잎이 이제는 이불처럼 쌓였다. 나무는 동절기를 대비하느라 잎을 떨어내는데, 나는 오히려 지난여름을 떠올린다. 짙은 녹음을 만들어주던 무성하던 잎 넓은 이파리를 그리며 돌아오지 않을 상념에 잠긴다. 부허하던 젊은 시절, 소쩍새 우는 사연을 찾아 낡은 시집을 뒤적인다. 시몬, 나뭇잎새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버림을 받아 땅 위에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석양의 낙엽 모습은 쓸쓸하다 바람에 불릴 적마다 낙엽은 상냥스러이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2024.11.14 -
창해물회 대구탕
먹거리만큼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매개체도 흔치 않다. 안부를 나누거나, 과업을 진행할 때 최애의 인사말이 '밥 한번 먹자'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싫고 미운 사람과는 밥 먹는 것을 기피한다. 그러고 보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이른 아침 동호회 회장님이 '12:30. 창해물회, 대구탕 점심' 문자를 보내왔다. 얼마 전부터 감기로 컨디션이 별로였는데 쾌차하신 모양이다. 창해물회는 가끔 들리는 집이다. 갈 때마다 손님이 예전만 못해 공연히 근심됐는데, 날이 차가워진 덕분인지 예상과 달리 손님이 많았다. 코리안 타임을 싫어하면서도 십 분 늦었다. 먼저 도착한 회장님이 대구탕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해두었다. 곧 뜨거운 음식이 나왔다. 수성못 맛..
2024.11.13 -
경산 환성사
하양읍 스타벅스 무학점을 지나 한 줄기 후미진 도로를 5km 정도 따라가니 환성사다. 사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언저리 빈터, 파란 하늘이 트였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울린 맨땅바닥 주차장이 자연 친화적이다. 오른쪽에 일주문이 서 있다. 속(俗)과 성(聖)의 경계가 지척이다. 일주문이 특이하다. 대부분 둥근 목조기둥 2주를 세운 것이 일반적인데, 네 개의 돌기둥이다. 양 끝의 두 기둥은 사각이고 자세히 보니 가운데 두 개는 팔각이다. 일주문은 세속의 번뇌를 문밖에 내려놓고 오직 일심 하나만 가지고 도량으로 들어오라는 상징적인 문이다. 한 발을 내디디니 청정 법계다. 일개 범부가 번뇌 망상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일주문을 지나 가람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환성사 쇠..
202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