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여행(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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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활성리 석불입상
* 慶州 活城理 石佛立像*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현지 해설판(요약)석불은 연지암에 모셔져 있는 여래입상이다. 배 모양으로 다듬은 광배 앞면에 불상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있고, 귀가 매우 길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훼손되어 수리한 것이다. 몸은 균형이 잘 잡혀 당당해 보이며, 양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긴 옷자락이 몸 전체를 덮고 있다. 양손은 가슴 앞까지 들고 있으며 원손에는 약그릇으로 보이는 지물이 있다. 광배는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구분하여 도드라지게 새기고 바깥 부분에 불꽃무늬를 새겨 넣었다.'김연지화'라는 보살이 발 가운데서 목탁 소리가 들려오는 꿈을 꾸고 그곳에 직접 가서 땅을 파서 보니 이 석불이 나왔으므로 암자를 지어서 연지암이라고 하였다고 ..
2025.01.27 -
경주 숭복사지 삼층 석탑을 다녀와
* 崇福寺址 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현지 안내판(요약)석탑은 숭복사 터의 금당지 앞에 동서로 서 있는쌍탑이다. 두 탑은 동일한 규모와 형태로 2층의 바닥돌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올렸으나 동탑은 2층 몸돌과 머리 장식 부분이 없어졌고, 서탑은 1층과 2층의 지붕돌만 남았다. 바닥돌의 위층 네 면에 2구씩 팔부신중상을 새겼고, 1층 몸돌에는 문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의 아래 받침은 4단이다.지금의 원성왕릉(사적) 자리에 있던 곡사를 이곳으로 옮겨와서 '대숭복사'라고 하였는데, 최치원이 절을 옮기게 된 배경과 과정을 '초월산 대숭복사비'에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절터에 남아 있던 비석의 받침돌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비석은 2013년 금당지 남쪽에 복원되었다.* 답사 노트: 제38대 원성왕이..
2025.01.26 -
경주 원원사지 동, 서 삼층 석탑
* 慶州 遠願寺址 東, 西 三層石塔*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원원사는 신인종(神印宗, 밀교의 한 종파) 승려들과 김유신 등 당시 주요 인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다. 동, 서 삼층석탑은 금당 터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1년 경주 고적보존회가 복원했다. 두 탑 모두 2층 바닥돌 네 면에 십이지신상을, 1층 몸돌 네 면에 사천왕상을 새겼다. 석탑은 일반적 양식의 신라 석탑 가운데 부조상을 새긴 가장 이른 시기의 탑으로 알려져 있다.* 답사 노트: 사적으로 지정된 봉서산 원원사지는 통일신라 시대 절터다. 원원은 멀 遠(원)자에 원할 願(원)자이다. 멀리 있는 것을 원하는지, 윈하는 것이 멀리 있는 뜻인지 범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원원사는 신라 왕실과 김유신 등의 지원을 받아 창건해 신..
2025.01.25 -
경주 낭산 선덕여왕릉을 다녀와
어제는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보물)을 다녀왔고, 오늘은 낭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선덕여왕릉(사적)을 다녀왔다. 그리고 주변의 사천왕사지(사적)와 능지탑지(경북 기념물)를 둘러봤다. 인근의 신문왕릉도 갔으나 정비 공사 중으로 입장할 수 없었다. 모두 낭산에 있는 문화유산들이다.선덕여왕릉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바닥은 맨땅의 공터이고 간이 화장실이 설치돼 있었다. 바로 앞이 사천왕사 터였다. 사천왕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찰이다. 이십여 년 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빈터는 미완의 조형물과 사찰 부재, 두 개의 받침돌과 당간지주만 휑했다. 호국불교로 명성을 떨쳤고,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의 신령스러움을 증명한 사찰이었다지만, 지금의 빈터는 널찍하기만 해 공허했다. 인적 없이 쓸쓸한 바람만..
2025.01.23 -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칠불암 위의 바위에 새긴 동남향의 보살상이다. 바위 표면을 광배 모양으로 파내고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보살상의 아래쪽에는 피어오르는 구름을 새겨 마치 부처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모습이다. 불상은 머리에 보관을 썼고, 보관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아 있다. 오른손은 손목이 구부러진 형태로 손에는 꽃가지를 쥐고 있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설법할 때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다리를 아래로 내리고 왼쪽 다리를 접어서 대좌에 올려놓은 반가 자세를 하고 있다. 옷의 주름이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며 옷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대좌를 덮고 있다. 손에 꽃가지를 들고 있어 이 불상을 미래불인 미륵보..
2025.01.20 -
경주 영지 석불좌상
* 影池 石佛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현지 안내판(요약)이 석불좌상은 얼굴에 손상은 많지만, 광배와 대좌표효까지 남아있다. 광배는 불상과 한 돌로 조각했다.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오른쪽 어깨는 노출되고 원쪽 어깨만 가사를 걸친 형식)과 황마촉지인(오른손을 폴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을 한 손 모양에서 석굴암 본존상의 모습을 따랐다. 영지에 인접해 있어 아사달이 아사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영지 곁에 모셔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1740년에 쓰인 '불국사고금창기'에 영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백제 석공 아사달이 불국사 석가탑(무영탑)을 만들고 있었다. 아내 아사녀가 남편이 그리워 서라벌까지 찾아왔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으며, 탑이 완공되면 연못에 ..
2025.01.17 -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 慶州 骨屈庵 磨崖如來座像* 보물* 현지 안내판(요약)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해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불상이다. 상투 모양의 머리인 육계가 솟아 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눈, 코, 입은 좁고 가늘다. 돋을새김한 얼굴에 비해 몸은 평평한 편이며 어깨가 넓다. 옷 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을 이루고, 겨드랑이 부분에는 팔과 몸이 구분되도록 U자 모양의 무늬를 넣었다. 불상의 뒤쪽 암벽에 광배를 새겼는데 머리의 광배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몸 주변에는 불꽃무늬다. 광배와 더불어 불상의 목과 가슴 윗부분에 손상이 있다. 이 불상은 평면적인 신체와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의 옷 주름 등의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림사를 중창한 원효대사가 말년..
2025.01.16 -
경주 문화원에서
경주는 신라 천 년의 이미지와 함께 조선 시대의 자취도 힘들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월요일 오전의 경주 문화원은 조용했다. 조선 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이었던 경주 문화원은 1915년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 분관이 설치됐다. 이때 경주읍성 남문 밖에 있던 국보 성덕대왕신종과 종각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광복 이후에도 경주박물관으로 이용하다가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건립되자 신종을 다시 옮겨 가고 종각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경주부 관아 건물은 현재 향토사료관으로 경주읍성 복원도와 조선 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향토사료관 앞의 전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왼쪽(서쪽) 나무는 1926년 방한한 스웨덴 황태자가 기념식수를 했고, 비슷하게 자란 오른쪽(동쪽)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표식..
202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