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 선덕여왕릉을 다녀와

2025. 1. 23. 22:48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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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보물)을 다녀왔고, 오늘은 낭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선덕여왕릉(사적)을 다녀왔다. 그리고 주변의 사천왕사지(사적)와 능지탑지(경북 기념물)를 둘러봤다. 인근의 신문왕릉도 갔으나 정비 공사 중으로 입장할 수 없었다. 모두 낭산에 있는 문화유산들이다.


선덕여왕릉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바닥은 맨땅의 공터이고 간이 화장실이 설치돼 있었다. 바로 앞이 사천왕사 터였다. 사천왕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찰이다. 이십여 년 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빈터는 미완의 조형물과 사찰 부재, 두 개의 받침돌과 당간지주만 휑했다. 호국불교로 명성을 떨쳤고,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의 신령스러움을 증명한 사찰이었다지만, 지금의 빈터는 널찍하기만 해 공허했다. 인적 없이 쓸쓸한 바람만 불었다.


사천왕사지를 나와 선덕여왕릉에 갔다. 주차장에서 농로를 따라가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섰다. 길목마다 방향 표지판이 서 있고 인도 블록이 깔려 걷기 좋았다. 500여 미터쯤 따라가니 그윽한 소나무 숲 한가운데 능이 숨은 듯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사 최초의 여왕으로 지혜로웠던 선덕여왕은 재위 15년 만에 승하해 이곳에 영원히 잠들었다. 능에서 진짜 향내가 진동했다. 향이 타고 남은 찌꺼기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다녀가면서 향을 피운 후 불조심 하려고 가져갔나 보다. 왕의 유언에 따라 조성된 능은 전해지는 스토리처럼 신비하다기보다 편안하고 예뻤다. 여왕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고, 분황사를 비롯해 호국의 상징인 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우는 등 불교를 진흥했다. 죽기 전 건립한 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든 천문 관측대다. 능을 한바퀴 돈 후 반대편의 능지탑지 방향 표지판을 따라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솔숲이 아늑하고 고요했다. 우줄거리는 듯 굽은 소나무의 운치가 왕릉의 미를 더욱 가꿨다.


능의 구역을 벗어나자, 과수원 사이로 시멘트 포장길이 나 있었다. 거기서 500여 미터 내려가니 능지탑지가 나왔다.


능지탑지는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화장터로 추정하는 터다. 인근에 어제 다녀온 마애보살삼존좌상이 멀지 않다. 무너진 채 버려져 있던 탑을 1979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했다. 원래 탑은 기단의 네 면에 십이지신상을 세워놓은 5층 탑으로 추정한다. 십이지신상 중 일부는 낭산 동쪽 황복사 터 앞에 있던 미완성된 왕릉터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미완의 왕릉은 제34대 효성왕의 가릉으로 추정한다. 병석에 있을 때 능침을 준비하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해 동해에 산골 하는 바람에 능이 폐기됐다. 능지탑지에는 정비하고 남은 연꽃을 새긴 부재가 상당수 쌓여 있었고, 흙을 쌓아 만든 단이 남아 있다. 어쩌면 토단의 흔적이 문무왕을 화장한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들었다. 능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고귀한 신분의 여왕도, 대왕도 '인생 백 년'의 덫을 피할 수 없었다는 무상을 실감했다. 백 년은 잠깐이다. (202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