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9. 23:14ㆍ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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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慶州 逸聖王陵
* 사적
* 현지 안내판(요약)
이곳은 신라 제7대 일성왕(재위 134~154)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일성왕은 박씨이고 이름은 일성, 왕호는 이사금이다. 삼국사기에는 제3대 유리왕의 맏아들이라 하였으나, 삼국유사에는 유리왕의 조카 혹은 제6대 지마왕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일성왕은 재위 기간에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하여 대신들과 함께 중요한 국사를 처리하였으며, 경작지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였다. 이 능은 남산의 서북쪽 산기슭에 있다. 이 무덤은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둘레돌로 보이는 자연석 일부가 드러나 있다. 능 앞에는 1871년에 세운 표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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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노트: 남간마을회관을 지나 보광사 앞에 주차했다. 차가 갈 수 있는 도로가 끝나는 부분이었다. 절 앞의 금강저수지가 푸른 물을 가득 담아 반짝거렸다. 금강채 카페 대문 앞으로 난 외길을 따라 200m쯤 걸어가니 일성왕릉이었다. 녹음 짙은 도래솔이 주변 소나무와 비교됐다. 왕릉관리가 잘됐다. 능은 솔숲 한 가운데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후대에 쌓은 3단 축대의 한 가운데의 계단을 올라 능에 섰다. 작은 제단과 오른쪽에 1871년(고종 8) 세운 비석이 서 있었다. 축대를 쌓을 때 함께 세웠을 것 같다. 제단 앞은 한 사람 정도 참배할 수 있도록 좁았다. 신라 제7대 일성이사금은 말갈의 잦은 침입을 막아내고, 중요한 국사는 정사당을 설치해 처리하고, 권농령(勸農令)을 내려 제방을 보수하고 논밭을 개간했다. 동시에 백성의 금, 은, 주옥 사용을 금지해 사치를 멀리하게 했다. 심한 가뭄에는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 능에 머무는 동안 수컷 곤줄박이 한 마리가 왕릉이 놀이터인 양 앉았다가 포르롱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설마 일성왕의 넋이기야 하랴. (20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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