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9. 12:04ㆍ여행의 추억
![](https://blog.kakaocdn.net/dn/oEn7O/btsL8nIorbL/XzY8i5s1mi39OpoQ7CXXZK/tfile.jpg)
* 慶州 金尺里 古墳群
* 사적
* 현지 안내판(요약)
금척리 고분군은 50여 기의 크고 작은 봉분들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금척(금으로 만든 자)을 하늘로부터 받았는데, 중국이 이를 탐해 사신을 보내자, 금척을 이곳에 묻어 숨긴 후 40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이 금척인 것은 이 전설에서 유래한다.
고분군은 서쪽으로 갈수록 봉분의 크기가 큰데, 가장 서쪽에는 표주박 모양의 고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1952년 경주와 대구 간 국도 공사를 할 때 반이 잘려 나간 고분 2기를 발굴하였다. 조사 결과 이 무덤들은 삼국 시대 때 신라에서 주로 사용한 돌무지덧널무덤임이 확인되었고, 금으로 만든 가는고리귀걸이, 은으로 만든 허리띠, 호박옥, 굽은옥, 쇠칼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신라 수도의 6부 가운데 하나인 점량부 또는 모량부라고 불렀던 행정조직체가 있던 곳이다. 고분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5, 6세기 모량부 귀족들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https://blog.kakaocdn.net/dn/bSZQb9/btsL8J5xX2N/NTkTztjJYVOo6KSyEJ8e5K/tfile.jpg)
* 답사 노트: 경주에서 왕릉과 대릉원만 탐방하다가 -관광 지도에- 고분군이 나와 있어 찾아갔다. 고분군은 한 가운데 도로가 관통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크지 않은 고분군인데 우회해 도로를 개설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한국전쟁 당시여서 그런 의견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능과 원은 잔디를 깨끗이 깎아 이미지가 좋은 반면, 고분군은 그러하지 못해 흉흉해 보이기까지 했다. 보이고 밟히는 돌 하나까지 유적일 수 있는 경주시는 행정의 손길이 일시에 다 미치기 어렵겠다. 사적이니 만큼 조속히 환경 정비했으면 좋겠다. 고분군이 다른 지자체에 존재했다면 의미 있는 문화유산으로 귀한 대접을 받을지도 모른다. 금척리 고분군은 신라 건국 6부 중 점량부(모량리나 건천 일대)의 귀족 무덤이라고 한다.
무덤을 지칭하는 명칭은 분(墳), 능(陵), 원(園), 묘(墓), 총(塚) 등 다양하다.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으면 능, 원, 묘로 나누고 알 수 없는 경우 총, 분으로 구분한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의 친척(왕세자, 부모, 후궁 등)이 묻힌 무덤, 묘는 그 외의 사람이 묻힌 무덤을 의미한다. 총은 주인을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무덤이고, 분은 주인도 모르는 중요한 가치가 없는 무덤이다. 금척리 고분군은 분에 속한다. 무덤 주변에 공사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옛날옛적에 숨겨 놓았다는 금척이나 발굴됐으면 좋겠다. (2025.2.3.)
![](https://blog.kakaocdn.net/dn/o4s0V/btsL72LgP8u/K8YmxSEm2nR1nzN6rO1Iy1/tfile.jpg)
![](https://blog.kakaocdn.net/dn/s9NeP/btsL7Nt2hBN/oniUBP7rCdSrHh9w8cNnN1/tfile.jpg)
![](https://blog.kakaocdn.net/dn/bPSbaH/btsL8NUpm1G/ao1oQK13JMyuO118zD4kRK/tfile.jpg)
![](https://blog.kakaocdn.net/dn/cnhIxh/btsL7N1SC2L/zzMaHyAD11aLv9fMtdB7hK/tfile.jpg)
'여행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령 천북굴단지와 홍성 스카이타워에서 (0) | 2025.02.10 |
---|---|
경주 일성왕릉 (0) | 2025.02.09 |
경주 전 홍유후 설총의 묘 (0) | 2025.02.08 |
경주 진평왕릉 (0) | 2025.02.07 |
경주 당간지주와 석조 6곳 (0) | 202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