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8. 20:36ㆍ여행의 추억
* 傳 弘儒侯 薛聰 墓
* 경상북도 기념물
* 현지 안내판(요약)
이곳은 신라 신문왕 때 학자인 설총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다. 홍유후는 그의 시호(諡號, 죽은 뒤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다. 설총은 강수, 최치원과 함께 신라 3대 문장가이며, 신라 10현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설총의 아버지는 원효이고 어머니는 태종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다. 출생 시기는 654년에서 660년 사이로 추정되고, 사망한 때는 알 수 없다. 신문왕 때 강수와 함께 국학박사로 임명되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벼슬은 한림(翰林, 임금의 말과 명령을 글로 짓는 일)을 맡아 하던 벼슬에 이르렀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이두의 정리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화왕계를 지었다. 무덤에는 둘레돌이 몇 군데 드러나 있으며, 무덤 앞에는 경주 및 순창 설씨 후손들이 설치한 상석과 묘비가 있다.

* 답사 노트: 진평왕릉 인근에 설총의 무덤이 있었다. 팻말에 傳 弘儒侯 薛聰 墓라고 돼 있다. 홍유후는 시호라니 알겠는데 앞 글자, 전할 傳(전) 자는 왜 붙는지 모르겠다. 없어도 알겠는데 무슨 의미일까? 무덤에 관해서 평소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설총은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의 아들이고,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로 적은 표기법인 이두를 집대성했고, 우리나라 최초 창작 설화인 화왕계*를 지었다는 정도다. 설총은 경산 출생의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다. 우연히 여행하면서 만난 무덤으로 그의 자료를 찾아 다시 한번 읽어봤다. (2025.2.3.)
* 화왕계(花王戒): 신라 신문왕 때 설총이 꽃을 의인화하여 지은 우언적(寓言的)인 한문 단편. 꽃의 왕 모란이 아첨하는 미인 장미와 충간을 하는 백두옹 사이에서 누구를 택할 것인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백두옹이 왕을 질책하였다는 내용이다. ≪삼국사기≫ <설총전(薛聰傳)>에 실려 있으며, ≪동문선≫에는 <풍왕서(諷王書)>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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