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0. 22:22ㆍ여행의 추억
지난 크리스마스, 세 시간 반을 달려 보령 천북굴단지에 갔다. 우리나라 굴 중에서 젤이라는 천북 굴을 맛보면서 친구들과 석양배하고 하룻밤 보내려는 거다. 주차장과 도로까지 차들이 점령해 통행하기조차 불편했다. 말로만 듣던 유명세가 허언이 아니었다. 축제 기간은 끝났는데 크리스마스 휴일 나들이객이 차산인해(車山人海)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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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숙소에 먼저 갔다. 굴단지에서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숙소는 넓은 주차장이 시원하게 비었다. 외벽에 달라붙어 얼기설기 엮인 청라의 줄기가 해풍에 휘날리는 여인의 긴 머리카락 같았다. 인상적이었다. 방에 들어가니 창가 풍광이 끝내 주었다. 수평선에 안면도가 시커멓게 막아섰지만, 망망한 대해는 그지없었다. 바다 한가운데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공상하는 동안 벗들이 다 모였다. 해가 중천에 빛나 굴단지로 선뜻 나설 마음이 없었다. 아산 사는 K가 멀지 않은 홍성에 바다 전망대가 있으니, 낙조를 보고 오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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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언덕 위에 별다른 시설 없이 타워 구조물이 덩그렜다. 커다란 아령을 세워 놓은 듯했다. 높이가 65m란다. 표를 사면서 경로라고 말했는데 온 표를 끊으라고 했다. 내려온 후 알고 보니 할인 대상이 맞았다. 전망대의 스카이 워크는 둘레가 360도 66m의 강화유리 바닥이어서 아슬아슬해 겁이 났지만, 난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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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조 시간대여서 뻘밭 멀리 서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수평선에는 분홍빛 노을이 하늘과 경계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찌푸린 날씨는 더 이상 낙조를 보여주지 않았다. 해풍을 맞으며 뻘밭을 굽어봤다. 갯골은 추상화를 그려 놓은 듯했다. 물이 빠져나간 기형적인 갯벌을 보니 서해 해변에서 군에 복무하던 때가 아스라이 추억됐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처음 보낸 객지여서 서해는 항상 고향 같은 생각이 든다. 전망대를 내려오자, RGB 조명이 타워에 여러 가지 색깔을 수놓기 시작했다. 천수만 일대의 바다를 조망하면서 스릴을 느끼게 하는 멋진 전망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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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게 내린 천북굴단지로 돌아왔다. 대낮의 그 많던 사람과 차가 빠져나가서 한산했다. 고만고만한 식당이 줄을 이었다. K가 단골집이라면서 민들레 수산으로 안내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여주인장이 사근사근하고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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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구이는 불에 굽는 과정에서 가끔 터지기도 해 불편하다면서 굴찜을 하기로 했다. 껍질을 까지 않은 석화 한 망태기를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양은그릇에 쏟아부었다.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찐 후 우리 자리로 가져왔다. 새우, 조개, 가리비도 맛보기용으로 들었다. 한 손에 장갑을 끼고 뜨거운 껍질을 땄다. 굴이 굵고 싱싱했다. 알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크기는 달랐지만, 쌍둥이처럼 두 개가 든 것도 있었다. 짭짤해 초장에 찍지 않아도 됐다. 처음 볼 때는 양이 많아 어떻게 다 먹겠나 싶었는데 다섯 명에게 알맞은 분량이었다. 맛보기용으로 다른 메뉴들도 조금 주문해 맛봤다.
굴은 맛이 좋으면서 영양이 풍부해 바다의 우유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 팔도밥상(KBS1)에서 굴찜, 굴배추전, 굴칼국수, 굴젓게장국, 어리굴젓, 게국지 등 갯벌이 주는 풍요한 굴 요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만드는 방법이 쉽고 때깔도 좋아서 먹고 싶었었는데 이 중의 서너 가지를 맛 본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 (202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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