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당간지주와 석조 6곳

2025. 2. 6. 23:14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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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석탑과 마애불을 보려고 경주에 갔다. 관광 지도를 체크해 찾아가다 보면 의외로 도로 표지판을 보고 또 다른 문화유산을 만나기도 한다. 옛 절터의 탑을 보려고 폐사지에 가면 교통 좋은 곳은 크고 작은 사찰이 이미 들어섰고, 길이 없는 논밭이거나 접근이 험한 산기슭은 빈터가 그대로였다.
이번 답사에 의외로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석조(石槽)를 만났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의례나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높이 다는 당간을 받쳐 세우는 기둥이다. 깃발을 당, 깃대를 당간, 지주는 당간을 지탱해 주는 지지대다. 석조는 돌로 만든 물통이다. 규모나 형태로 보아 대부분 큰 사찰의 부재였음이 짐작됐다. 별처럼 많은 가람과 탑들이 서라벌을 수놓았을 때, 민가는 어디쯤 모여 살았고 인구는 얼마나 됐을까? 오지까지 무거운 석재를 어떻게 옮겼고 석공의 수는 얼마나 됐을지도 궁금해 맘대로 상상해 보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상상이 답사의 재미였다. 당간지주와 석조의 현지 안내판을 참고삼아 요약해 둔다. (2025.2.2~2.5.)

1. 보문사지(普門寺址) 당간지주: 보물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북쪽 기둥은 윗부분이 일부 떨어져 나갔고, 남쪽 기둥만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두 기둥에는 당간을 고정하던 홈이 3개씩 있다. 남쪽 기둥은 구멍을 뚫어 홈을 만들었다. 한쪽 기둥에만 구멍을 낸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전체적인 형태가 가늘고 긴 모습이지만 안정감이 있다. 규모가 비교적 작고 그 모습이 매우 소박하다.



2. 보문사지 연화문(蓮華文) 당간지주: 보물


이 연화문 당간지주는 8세기 중엽 이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으며, 땅 위에 드러나 있는 가운데 부분은 다른 면보다 불룩하게 나와 있다. 꼭대기에는 큰 홈이 안쪽으로 파여 있다. 위쪽 바깥 면에 네모 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원형으로 8장의 연꽃잎을 돌려 새겼다. 이처럼 장식한 예는 찾기 어렵다.



3. 보문사지 석조(石槽): 보물


석조는 돌로 만든 물통이다. 석조는 보통 직사각형이나 원형의 큰 돌로 만드는데 이 석조는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안팎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어 소박한 느낌을 준다. 주변 유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 남간사지(南澗寺址) 당간지주: 보물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지에서 남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70cm의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당간을 고정하려고 구멍 세 개가 뚫려 있는데, 맨 위의 '+(십)'자 모양 구멍은 다른 당간지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 없어 소박하고 단순하다. 통일 신라 중기의 작품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5. 망덕사지(望德寺址) 당간지주: 보물


망덕사지 당간지주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바깥 면의 양 모서리가 중간쯤부터 위쪽으로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맨 위쪽에 네모 난 홈이 있어 이곳에 당간 고정 장치를 설치했다. 신라가 부처의 힘으로 당나라의 외침을 막고자 사천왕사를 지을 때, 당나라 의심을 피하고자 급히 망덕사를 창건하였다. 그 뒤 효소왕 1년(692)에 절을 정식으로 다시 짓고 낙성재를 열었다.

도로에서 바라본 망덕사지와 당간지주.
망덕사지는 사천왕사지와 마주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려고 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당나라에서는 이를 확인하려고 신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신라는 사천왕사를 감추기 위해 그 남쪽에 급히 새로운 절(望德寺)을 짓고 사신에게 황금을 주어 무마했다. 사신이 당에 돌아가서 새로 지은 절이 황제의 만수를 빌고 있는 절이 맞다고 보고해 위기를 넘겼다.



6. 불국사(佛國寺)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경내입구 대석단 앞에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서 있는 2쌍이다. 보통 1쌍의 당간지주를 세우는데 불국사나 황룡사, 익산 미륵사와 같은 큰 절에는 2쌍이 설치되기도 한다. 동쪽은 통일 신라 때의 것이고, 서쪽은 서로 다른 당간지주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되며 위쪽에 홈이 있는데, 조선 시대에 괘불을 거는 기둥으로 활용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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