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DAY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끝)

2025. 1. 29. 19:56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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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은 거창한 외부보다 내부가 더 아름답다.


2019.4.25.(목), 흐리고 비.

구시가지에 위치한 호스텔 이 층의 방은 아담하고 깔끔했다. 흐리고 비가 오니 아랫목이 절로 그리웠다. 찌뿌둥한 몸을 침대에 눕혔다. 살갗에 닿는 깨끗한 백설 같은 이부자리가 포근했다. 카미노를 빨리 마쳐 생긴 자투리 시간이라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커튼을 젖혀 거리를 무심히 내려다봤다. 길바닥의 포석들이 비에 젖어 반짝거렸다. 한산한 거리는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빗물 따라 무료한 시간이 흘러갔다.

산티아고 버스 터미널.


손명락과 함께 포르투행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터미널에 갔다. 어제보다 많이 붐볐다. 손명락은 삼 년 전 여행한 경험으로 이번 여정을 앞장서서 주도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유럽에는 ALSA 버스를 더 쳐주는 것 같아 10:00 표를 끊으려 했으나 매진돼 08:40 FLIXBUS를 예매했다. 요금은 비슷했다. 산티아고에서 포르투갈 포르투Porto까지 29.99유로, 우리 돈으로 39,000원 정도였다. 국경 넘는 값치고는 너무 쌌다. 터미널을 나오다 우성현과 주○철을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근황을 들었다. 카미노에 함께 왔다가 사이가 어긋나 헤어졌던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 마음이 놓였다. 저녁에 우리 일행들과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호스텔에 돌아와 다 같이 바깥으로 나갔다. 구시가지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했어도 얻은 게 많았다. 미로 같은 골목, 각종 액세서리와 기념품 가게, 옷 가게, 음식점, 벼룩시장 등 다양한 눈요기를 하느라고 고갯짓이 바빴다.

아바스토스 시장.
정육동은 고기만 팔았다.
시장은 난전이 있어야 맛이 난다.


근처의 아바스토스 시장Mercado de Abastos de Santiago으로 갔다(11:40). 외부에는 우리나라 전통 시장처럼 좌판에다 싱싱한 야채를 파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자영한 농작물을 조금씩 들고나와 파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같았다. 시설 내부는 전통 가게와 함께 레스토랑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여러 동의 건물은 입구마다 판매 물품을 상징하는 조각품들을 걸어 놓아 수산물인지, 정육점인지 구분이 됐다. 현재 건물은 1941년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지었다고 한다. 시장 내부보다 바깥 풍경이 인정스러웠다. 바구니에 농작물을 담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정겹고, 상품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친근해 보였다. 주변에 장식된 시계탑과 조각상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시장에 오면 놓칠 수 없는 게 군것질이다. 우리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라는 속담이 무색했다. 군침만 흘리다 돌아섰다.

뉴로즈 도네르 케밥 식당.


점심을 먹으려고 신시가지로 향했다(13:00). 난데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를 피하려고 눈에 띄는 케밥 가게 newroz döner kebap로 무작정 들어갔다. 여러 개의 꼬챙이에 꿰어진 큰 고깃덩이로 보아 케밥 전문집이 분명했다. 케밥은 양념한 고기를 채소와 함께 먹는 터기 전통 음식이다. 꼬챙이에 끼워진 한 덩어리는 하나의 큰 고깃덩이가 아니고, 고기를 한 장 한 장 포개 큰 고깃덩어리로 모양을 냈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장은 고깃덩이를 돌려가며 얇게 삐져냈다. 우리는 메뉴판을 살펴보고 햄버거와 피자를 주문했다. 케밥 전문 식당에서 의외의 주문이었지만 맛이 좋았다. 식사 후 마켓에 들렀다. 아이스크림으로 마음을 달콤하게 녹인 후 숙소로 돌아오는 중 비가 그쳤다. 문득, 이의리 시인의 詩 ‘소나기’가 떠올랐다.

소나기가/ 한바탕/ 쓸고 간 자리// 나무들을/ 말끔히/ 목욕시키고// 하늘은/ 더 높이/ 밀어 올리고// 먼 산을/ 내 앞에/ 옮겨 놓았다

오늘 도시 풍경이 詩와 똑같았다. 시인이 여기를 다녀갔었나 보다.


우성현과 주○철을 만나려고 오브라도이로 광장으로 갔다(19:00). 여전히 비가 내렸다. 비에 흠뻑 젖은 대성당이 더욱 장엄해 보였다. 파사드 중앙의 검은 문은 영광의 문이고, 중앙탑 꼭대기 아래에는 성 산티아고상이 있었다. 왼쪽 첨탑은 까라까탑, 오른쪽 첨탑은 깜빠냐스탑, 끝부분의 동양식으로 생긴 탑은 꼬로나탑이다. 깜빠냐스탑과 꼬로나탑 사이에 솟은 종탑은 뒤편의 레로탑이 보이는 것이었다. 대성당 내부는 또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다운지.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촬영 금지여서 살짝 아쉬웠다.

두 사람을 만났다. 일행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순례자협회 사무실 앞, 레스토랑Tarara에서 순례자 메뉴로 그동안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이국땅에서는 같은 민족끼리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상도 애틋한 정(情)을 느끼게 했다. 식사 후 주○철이 먼저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우성현은 헤어지는 게 아쉽다며 석별연을 내겠다고 우리를 따라왔다. 숙소 앞 레스토랑Paradiso에서 뽈보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이 밤이 새고 나면 산티아고와도 작별이었다. 우리는 그간의 회포를 풀면서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카미노 순례의 해피 엔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마지막 밤은 포르투를 꿈꾸는 첫 밤이기도 했다. (끝)

숙박한 호스텔이 위치한 구 시가지.
길거리 건물 1층이 회랑으로 돼 있어 비가 와도 피할 수 있었다.


※ 이후의 여정은 포르투갈 포르투 > 리스본 > 모로코 사하라 사막 > 스페인 마드리드 > 톨레도 > 세고비아 > 바르셀로나를 배낭여행 했다. 건강과 자유와 기쁨이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