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DAY | 피스테라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025. 1. 29. 00:36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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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4.(수), 흐리고 비.

피스떼라 해변의 아침


피스떼라를 떠나는 아침이다. 생장피드포르에서 받았던(3.20.) 가리비와 이곳 알베르게에 입실할 때(4.22.) 주인장에게 선물 받은 가리비가 깨지지 않게 티셔츠로 돌돌 말아 배낭에 넣었다.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던 가리비를 이제 배낭에 넣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며 내 자신에게 스스로 훈장을 부여했다. 카미노를 무사히 걸을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준 등산용 스틱은 알베르게에 남겨 놓았다. 남은 여정에 불편할 수도 있고, 옛 순례자처럼 순례의 종결과 정화의 의미로 무엇이라도 하나는 피스떼라에 남겨두고 싶었다. 오늘부터는 순례자가 아닌 방랑자가 돼 좀 더 자유롭게 돌아다닐 작정이다.

알베르게를 나왔다. 버스정류장이 가까웠다. 아무도 없어 일등으로 줄을 섰다(09:05). 조금 지나자, 우리 뒤로 줄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 서양인이 아무 말 없이 우리 앞에 섰다. 어이가 없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같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기다리던 버스가 느직하게 왔다(09:52). 제시간에 오지 않고 늦게 나타난 버스를 보자 갑자기 줄 서 있던 서양인들이 달려들었다. 축구 경기하듯 우르르 몰려드는 바람에 줄이 무너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행동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란히 줄을 서 있는 데도 무지막지한 행동이 텃세인가 싶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들에게 떠밀려 늦게 올라탔다. 신사와 숙녀로 알았던 서양인도 별수 없었다. 점잖은 허울 속에 치졸한 모습이 숨어 있었다. 버스에 앉아 그들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잖을 떨었다. 혼자 쿡쿡거리며 웃었다. 어쨌든, 미끄러운 길을 조심히 운전한 기사님 덕분에 산티아고 버스터미널 Estacion de Autobuses에 안전하게 도착했다(11:15).

산티아고 버스터미널.


매표소로 올라가 포르투갈 포르투행 버스 시간표를 확인한 후 비를 맞으며 대성당으로 갔다.


다시 돌아온 대성당
김상기는 사진 찍어주기 바빴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그러나 비 때문인지 저마다의 걸음이 빨랐다. 우리는 숙소를 잡는 것 외에 바쁠 게 없었다. 막 도착한 순례자들의 환호에 같이 기뻐하고, 기념사진을 찍어주면서 한가하게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호객하는 호스텔 여주인을 만나 숙소Hostel Santa Cruz를 쉽게 잡았다. 2인 1실로 깨끗했다. 대성당과 구시가지, 신시가지로 드나들기 좋은 위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황경엽은 이마의 실밥을 뽑으려고 병원으로 갔다(13:20). 일행들이 함께 가려고 했으나 '스페인 혼자 살기' 연습이라면서 한사코 도리머리를 쳤다. 그사이 우리는 대성당을 한 번 더 돌고 숙소로 돌아왔다. 황경엽은 세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은근히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한 마리 독수리처럼 둥지를 찾아 들었다(16:30). 흉터가 조금 났지만 말끔해졌다. 그는 “이번에도 지난번같이 병원비는 무료였고 약국에서 약값만 계산했다.”라면서 “병원 찾기가 어려워 택시를 탔더니 대학병원 같은 곳에 데려다주더라. 의사를 만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라고 늦은 연유를 설명했다. 이유는 모르나 병원에서 치료비를 받지 않으니, 스페인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입을 모았다. 그 말은 '상처가 다 나아 축하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켓에 가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거리를 샀다.  여느날 보다 편안한 밤이었다.

대성당 돌벽 틈에서 자란 꽃. 생명이 있는 것들은 끈질겨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