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DAY | 라 페나 > 올베이로아 >(택시)무시아 >피스떼라

2025. 1. 27. 23:18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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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2.(월), 맑은 후 비.
25.7km(57.7km) / 5시간 22분



라 페나 알베르게의 후문은 숲길로 통했고 정문에는 도로가 나 있었다. 두 길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숙소에서 파는 샌드위치로 아침 요기를 간단히 하고 도로로 나왔다. 달을 보면서 걷는데 동쪽 하늘에서는 아침 해가 찬란한 빛을 뿜으며 올라왔다. 멀리 전원마을이 보였다. 엷게 깔린 안개가 우리네 농촌의 아침밥 짓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얀 쌀밥에 갓 담은 생김치를 올려 크게 한입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군침이 돌았다. 곧 이루어지리라 스스로 위로했다.


바퀴 세 개 달린 수레에 배낭을 얹어 걷는 외국인 여성을 만났다. 오르막길이라 도와주려니 괜찮다며 홀로 용을 썼다. 여성이라도 짙게 패인 주름과 부리부리한 눈이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여러 차례 말을 걸어왔으나 소통할 수가 없었다. 꼭 필요할 때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지만, 모국어밖에 모르니 길에서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 이런 순간이 늘 걸음을 다그쳤다. 여인은 맞춤 장비를 준비해 순례를 왔다. 카미노에 대한 높은 열망을 가늠케 했다.


두 시간 동안 마을과 도로와 흙길과 초지로 덮인 들판을 지나서 산따 마리아에 도착했다. 안내판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무시아를 거쳐 피스떼라까지의 마을 이름과 거리를 기록해 놓았다. 손명락이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지도를 보면서 얼마나 걸어왔고 얼마나 가야 할지 헤아리는 모습이었다. 그 민모습을 보며 문득, 나는 인생길을 어디쯤 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년퇴직한 후 몇 해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버렸다. 아직 늦지 않으리라. 돌아가면 소일거리라도 찾아야겠다.

반짝이는 수면은 열망의 댐


11:30,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르막을 걸어 전망이 탁 트인 언덕에 올라섰다. 호수의 수면이 햇살을 받아 물고기 비늘처럼 번득였다. 해변이 가까운 지역이라 바다인가 싶을 정도로 푸르고 넓었다. 구글맵으로 검색하니 Encoro da Fervenza 호수였다. 갈리시아 말로 ‘열망의 댐’이다. 발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작명은 지역 이름이나 동서남북 방위보다는 신화의 숨은 뜻이나 미래의 희망을 고려해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목초지에서는 풀을 트럭에 옮겨 싣느라 바쁘다. 사람은 없고 트랙터만 급히 오갔다. 한 트랙터가 풀을 거두어 잘게 썰면 카고 트랙터가 그것을 실어 농장으로 운반했다. 트랙터 두 대가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다. 농장의 빠예이로pallriro(건초 저장고)를 보니 우리나라 농장의 곤포 사일리지와 비교됐다. 그리고 둠브리아 마을에서 그동안 본 것 중에서 가장 큰 오레오horreo(옥수수 저장 창고)가 있었다. 지금이야 전통 건축물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부농의 상징이 되었을 법하다.


오후 한 시. 올베이로아에 진입했다. 산 넘어 피스떼라 하늘에 짙은 먹구름과 회색 구름이 심술궂게 섞여 있다. 레스토랑에서 날씨를 알아보았다. ‘오늘(월) 오후 네 시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목요일까지 내리겠다.’라고 예보가 돼 있었다. 어제는 32km를, 오늘은 25.7km를 걸었다. 비 맞고 걷기 싫어 남은 32km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종업원에게 부탁해 콜택시를 불렀다. 두 시 넘어서 택시가 왔다. 기사가 서글서글한 청년이었다.

무시아 0km 표석과 유조선 사고 조형물 상처, 배의 성모 성당
배의 성모 성당


올베이로아에서 삼십여 분 달려 무시아 해변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바다, 대서양이 우리를 맞았다. 말로만 듣던 망망대해의 너른 가슴에 안겨 길고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배(船)의 성모 성당Santuario de Nosa Senora da Barca’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었다.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성당보다도 압도적이었다. 광대한 바다와 마주한 모습만으로도 두 손을 모으게 했다. 성당 앞 ‘치유의 바위’로 한 순례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치유의 바위는 성모 마리아가 타고 온 돌배에 달려있던 돛의 흔적이라고 한다. 산티아고가 이곳에서 선교할 때 성모 마리아가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와 그를 도와주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갈리시아주 정부는 무시아에 또 하나의 카미노 순례 종착지로 0km 표석을 만들어 세웠다. 종착 푯돌이 성당 맞은편에 있었다. 그 뒤로 갈라진 사각형 조형물이 보였다. 예전에 무시아 앞바다에서 유조선(프레스티지호)이 좌초되어 약 7만 톤의 기름이 유출되어 큰 피해를 봤다. 그 사고를 각인시키려는 의미로 조형물을 세웠다. 이름마저도 ‘상처A Ferida’였다. 산 정상인 ‘꼬르삐뇨 전망대Mirador do Corpino’에 올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과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냈다. 푸근한 마음으로 사위를 완상하는데 바닷바람이 멋진 풍경을 자꾸만 쓰러뜨렸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한 기세였다.

피스떼라 0km 표석과 등대


오후 네 시 십분, 피스떼라 0.000km 표석에 섰다. 새들이 날개를 펼치듯 우리는 두 팔을 활짝 들어 올렸다. 처음 산티아고에 입성했을 때와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었다. 뿌듯했다. 표석 뒤에 누군가가 두고 간 등산화와 지팡이, 옷을 넣은 듯한 검은 비닐봉지를 보았다. 그는 허물을 벗어놓고 무엇을 얻어갔을까? 더 큰 자아를 찾았을까? 나 자신에게도 물어보았다. 아니, 자기 최면을 걸고 싶었다. 내 빈 껍데기 속에 알맹이를 채웠다고….

피스떼라 정보센타에서 증서 발급 중


친절한 택시 기사가 번화가인 항구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비가 뿌렸다, 피스떼라까지 온 이유 중 하나는 대서양의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정보센터Punto Informacion를 찾아가 피스떼라나Fisterrana 증서를 받았다. 계속 비가 내렸다. 비록 낙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줄기가 후련한 우리들 마음 같았다.


정보센터 인근의 사설 알베르게에 투숙했다. 텅 빈 알베르게에 냉기가 돌았으나 주인장의 심성은 따뜻했다. 비가 계속 내렸다. 비를 뚫고 밥 먹으러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망설였다. 눈치를 챈 주인장이 자기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 친구가 자기 차로 식당까지 데려다주었다. 세심한 배려가 피스떼라의 이미지를 더 좋게 심어주었다. 저녁밥을 먹고 알베르게에 돌아왔다. 순례하는 동안 손질 안 한 더부룩한 수염을 말끔히 깎았다. 예리한 면도날이 때 묻은 마음마저 밀어냈다. 오랜만에 두 다리를 뻗고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