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9. 08:24ㆍ여행의 추억
* 慶州 南山 七佛庵 磨崖佛像群
* 국보
* 현지 안내판(요약)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칠불암 내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7구의 불상들을 지칭한다. 동쪽을 향한 넓은 바위 면에 삼존상이 있고, 삼존상 바로 앞의 네모난 돌기둥에는 면마다 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과 두 보살로 된 삼존상, 돌기둥의 네 면에 새겨진 사방불을 합쳐 모두 7구의 불상들이 새겨져 있으므로 암자의 이름을 칠불암이라 부른다. 이곳에 있던 원래의 사찰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불상군의 핵심 불상은 삼존불 중앙의 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가사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사방불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손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정면에 해당하는 동쪽 면의 불상은 약그릇을 지니고 있어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의 뒤쪽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또 돌기둥 위에 홈이 파여 있고,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곳이 원래 지붕을 얹은 석굴 사원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에서 약사경과 금강경을 새긴 석경의 파면들이 발견되어 복과 장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민간의 약사 신앙과 관련된 사찰로 보인다. 석불의 제작 시기는 석굴암 본존불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 답사 노트: 1989년쯤 산행하면서 남산의 칠불암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동안 잊고 지내다가 경주 답사 여행하면서 칠불암이 떠올라 다녀왔다. 예전에는 서출지에서 출발했는데 오늘은 12:30, 염불사지에 차를 주차하고 2.2km 정도 산길을 올랐다. 평일이라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산길은 적막강산이었다. 뒤따라온 젊은이가 추월하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비호처럼 날랬다. 숨을 삭이느라 쉬어가면서 한 시간 만에 칠불암에 도착했다.
칠 불은 산 중턱의 크고 너른 바위와 기둥처럼 솟은 사각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었다. 너른 바위에는 삼존불을, 사각으로 네모 난 바위에는 한 면에 불상 하나씩 사방불을 부조했다. -현지 안내판에 따르면- 일곱 불상 마애불로 칠불암이라 부른다. 옛 절의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마애불을 앞에서, 옆에서 둘러봐도 여섯 불상이다. 남, 동, 북면은 보였지만, 서면 쪽은 반대편이라 보이지 않았다. 불상군은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중엽에 조성했다는 데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여 어제의 그것처럼 생생했다. 오히려 천 년 넘은 세월의 더께에 더 진중해 보였다. 마애불을 보면 -조각의 느낌은 현지 안내판 참고 삼고- 가장 먼저 산속에서 숙식하며 오랜 기간 조각에 몰두했을 위대한 석공들의 신심과 예술혼을 상상해 본다. 그들의 노고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 올랐다. 불단 앞 좁은 터에 모아 놓은 많은 부재와 탑재들이 당시의 사찰 규모가 예사롭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암자에 주석하는 비구니 스님이 인기척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차 마시러 들어오라고 했다. 목을 축일 겸 법당에 들었다. 작은 법당은 북쪽 벽면을 유리창으로 터 창을 통해 마애불이 훤히 보였다. 보이지 않던 서면의 마애불이 또렷했다. 덕분에 사면의 칠 불을 모두 다 봤다. 스님이 무 차를 끓였다. 말랭이의 심심한 맛이 건조한 입을 적셨다. 스님의 법명은 명정(明靜)이었다. 대구 ○○사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 프로그램을 십 년째 이수하다가 출가했다고 한다. 깜짝 놀라 스님 한 번, 마애불 한 번 쳐다보면서 차를 마셨다. 산중 암자에서 수행하는 스님은 차분하면서도 밝은 분이었다. 성불하시라 인사하고 법당을 나왔다. 칠불암에서 멀지 않은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에 가려고 발길을 옮겼다. (202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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