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3. 00:05ㆍ여행의 추억
* 鹰州 栗洞 磨崖如來三尊立像
* 보물
* 현지 안내판(요약)
벽도산 자락의 서쪽으로 향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부처와 보살의 입상이다. 광배 모양을 따라 바위를 파내어 평평하게 만든 면에 불상과 보살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중앙의 아미타여래상은 큰 머리 위에 상투를 튼 것처럼 보이는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우뚝 솟아오른 혹과 같은 것으로 지혜를 상징)가 솟아올라 있다. 옷은 얇게 표현되어 몸의 굴곡이 드러난다.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 둔 채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왼쪽 보살은 가늘고 긴 체형에, 왼손에 보병을 든 관음보살이고, 오른쪽 보살은 대세지보살이다. 두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이 없고 상투 머리를 한 점이 특이하다. 마애불 위쪽에 목조 지붕을 올렸던 것으로 보이는 혼적이 남아 있다.
* 답사 노트: 열차를 타기 전, 경주역과 비교적 가까운 <율동 마애여래 삼존입상>을 보러 갔다. 주차하고 멀지 않은 산길을 올라가면서, 보물을 찾아간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예쁜 보석함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귀금속이나 순금으로 만든 액세서리 따위가 보물인 줄 알았는데, 돌무더기 바위도 보물이 되니 어릴 때는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산길을 깨끗이 비질했다. 불성 깊은 분이 마음을 닦은 모양이다. 숨이 찰 때쯤 산신각 하나가 보였다. 이어서 바위 아래 비좁은 터에 'ㄱ'자 옛집이 하나 엎드려 있다. 닫긴 방문에 '성주암' 안내문이 붙은 빈 암자였다. 물이 없어 지내기 어려웠을 듯 보였다. 암자 위 큰 바위벽에 부처님 세 분이 병풍처럼 서 있다. 마애여래 삼존입상이었다.
불상이 젊은이를 닮았다. 체형도 날씬해 보였다. 널찍한 바위면 부처가 산길을 올라오는 중생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안내판을 참고하니 중앙의 아미타여래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다. 아미타여래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구제하고,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자비의 화신이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빛으로 중생의 미혹함을 없애준다고 한다. 부처와 보살의 임무로 보아 불교는 근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 같다. 중생이 원(願)을 세우면 머리를 숙이고 두 손바닥을 맞댈 수밖에 없겠다.
깊은 산의 마애불을 보면 천 년 전에 누가 쌓은 공덕일지 먼저 생각하게 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옛날 옛적에는 왕릉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니, 석공이나 시주자 이름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요즘은 건물이나 조형물에 관련자 직함을 새기고, 사찰의 기왓장이나 작은 탑 건립비를 시주해도 이름을 넣어주는 시대다. 옛사람의 무기명 헌신을 본 보자고 제안한다면 '책임은 누가 질래' 반문할 것 같다. (20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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