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DAY | 오세브레이로 > 뜨리아까스텔라

2025. 1. 17. 02:26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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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4.(일), 아침 비 후 맑음.
21.7km(669.3km) / 6시간 48분




일찍이 눈을 떴다. 그러나 알베르게에서 취사할 수 없기에 천천히 샤워하고 느긋하게 배낭을 꾸렸다. 는개가 소리 없이 안개처럼 내렸다. 배낭에 레인 커버를 씌우고 길을 나섰다. 길가에 잔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으스름한 날씨가 오히려 아침 분위기를 그윽하게 만들었다.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많고 안개가 끼는 등 기상 변화가 심하다더니 첫날부터 그 맛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되돌아오는 한인 청년을 만났다. 알베르게에 휴대폰을 두고 와 가지러 간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종교 순례를 온 그는 카미노에서 몇 번 얼굴을 익힌 구미에서 온 건장한 젊은이였다. 나도 모르게 내 휴대폰을 찾았다. 제자리에 있었다. 휴대폰은 이곳에서 대단한 조력자다. 잃어버린다면 큰 낭패다. 한참을 가니 그의 모친이 도로에 주저앉아 아들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걱정을 나누다가 앞서 걸어갔다.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휴대폰을 찾았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마을 입구에 공동묘지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리나레스를 지나니 산길 오르막이 시작됐다. 십여 분 오르니 해발 1,270m 산 로께 고개Alto do san Roque에 이르렀다. 한 손으로 모자를 꾹 누른 채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동상이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다. 폭풍우를 뚫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순례자 형상이다. 안개가 자욱해 실감이 났고 퍽이나 인상적인 기념물이었다.


평원을 벗으나 오르내리막이 연속되는 산간 지역을 사흘째 걷는다. “마을과 마을이 가까워지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멀지 않았다.”라고 손명락이 힘을 북돋워 주려고 애를 썼다. 알베르게를 출발한 지 한 시간여 지나 오스삐딸 데 라 꼰데사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취사가 되지 않았기에 길목의 바르나 카페는 아침 식사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도 그곳에서 토스트로 아침을 때웠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신기한 것은 시에스타Siesta였다. 시에스타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낮잠 자는 시간이다. 마을마다 시간이 조금씩 달랐다. 이때는 상점은 물론 관공서까지 문을 닫고 낮잠을 즐겼다. 건물 창틀에는 햇빛을 차단하는 특별한 재질의 커튼까지 있었다. 커튼을 내리면 창틀이 일순간 요새처럼 바뀌었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마을이 쥐 죽은 듯 고요해 기분이 묘했다. 시에스타는 한낮 무더위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자, 낮잠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저녁때까지 일하자는 취지다. 일행들과 예능 차원으로 이유를 찾아보니 배가 고파서, 인구 증대 정책, 밤잠이 모자라서 등 재밌는 대답이 나왔다.


오르내리막이 계속되는 산 옥산 마을을 거쳐 갈리시아를 지나는 카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1,335m의 뽀요 언덕Alto del Poio에 닿았다. 고개에 올라서자, 송아지만 한 개 두 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알베르게 뿌에르또, 바르에서 기르는 개였다. 대가리가 사람 머리보다 컸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녀석은 보기보다 온순했다.


다음 마을인 폰프리아는 축산 농가가 많아 쇠똥 냄새가 진동했다. 레보레이라Reboleira 알베르게를 통과하자 할머니가 집 앞에서 밀가루로 엷게 붙인 크레페를 들고 오라고 손짓했다. 접시를 자꾸 앞으로 내밀었다. 머뭇거리다 할머니의 선의를 생각해 하나씩 먹었다. 먹고 나니 돈을 달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동전을 모아 몇 유로 주었다. 더 달라고 했다. “노”라고 단호하게 잘랐다. 할머니가 순례자를 등 치는 듯해 묘한 느낌이 들었다. 크레페가 씁쓸한 맛 같았다.


비두에도 마을 카사에서 오렌지주스와 하드를 사 먹으면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지켜봤다. 오늘따라 카미노에 사람들이 붐볐다. 타이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발랄한 젊은이들이 자그마한 배낭을 메고 지나갔다. 순례라기보다는 휴일을 맞아 하이킹 나온 것 같았다. 뜨리아까스뗄라까지는 평탄한 길이었다. 돌담길과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목장이 드문드문 보였다. 쇠똥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코를 벌렁대며 한껏 맡았다. 고향 냄새 같은 평화로움이 밀려왔다. 작은 마을의 돌집들도 인상적이었다. 마을 어귀의 카사에서 시장기를 해결했다. 마침, 사장의 며느리가 아이를 데려왔다. 사장이 손주를 안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자라고 말했다. 아이가 사장을 빼닮았다.

마을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공동묘지.


사설 알베르게 아뜨리오에 배낭을 풀었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출입구는 작았지만 안은 넓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알베르게에는 우리 넷과 우성현, 정재형, 최인규, 김효겸, 김○주가 투숙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와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최인규가 밥을 짓고 소고깃국을 끓였고 설거지는 정재형이 해주었다. 우리도 그냥 있을 수 없어 와인 5병을 증정하고 디저트 비용 5유로를 냈다. 카미노의 마을들이 다 그러하듯 뜨리아까스뗄라도 기억에 남는 마을이었다.

사설 알베르게 아뜨리오.


갈리시아 카미노 표석에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의 남은 거리가 표시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