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DAY | 그라뇬 > 비암비스띠아

2024. 12. 29. 00:09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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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31.(일), 맑음/오후 흐림. 썸머타임 적용일
23km(257.8km) / 5시간 35분




호스텔에 투숙한 순례자가 한자리에 모여 아침을 먹었다. 엊저녁에 얼굴을 익힌지라 서로 대화가 오갔다. 많이 웃는 자리였다. 역시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배낭을 정리할 겸 조용히 빠져나왔다. 김○주는 외국인들과 즐거운 대화에 빠져 “먼저 출발하세요. 뒤따라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호스텔을 나서면서 기부금으로 5유로씩 도네이션 박스에 넣었다. 난방이 안 되어 너무 추웠고, 온수가 부족해 샤워를 어렵사리 했지만 두 끼 식사에다 숙박까지 한 것 치고는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등산화에 화려한 꽃을 심어 예쁘게 장식했다.


오늘은 라 리오하 주에서 부르고스 주로 들어간다. 부르고스 지방은 유럽 인류의 발상지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호모 안테세소르’의 유적지가 아따뿌에르까 산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라뇬에서 카미노를 따라 30여 분 걸어 주 경계 표지판에 도착하니 동녘에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른다. 날마다 보는 태양이건만, 막 떠오르는 해는 장엄하고 우람스러워 가슴을 뛰게 한다.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박두진 시인의 '해' 한 구절을 암송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영국 순례자가 애타게 찾고 있는 글을 카미노 곳곳에 붙여놓았다. 그동안 찍은 사진...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30여 분을 더 걸었다. 밀밭을 정원 삼아 아담하게 들어앉은 부르고스 주의 첫 마을, 레데시아 델 카미노가 나타났다. 카미노는 크고 작은 마을과 도시를 관통하거나 우회한다. 오늘 카미노의 마을, 까스띨델가도, 빌로리아 데 리오하, 마요르 델 리오, 벨로라도 등 마을이 그랬다. 30여 분 이내로 가깝게 다닥다닥 붙어있어 걷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예외 없이 눈에 띄는 시설 두 개가 있다. 신에게 경배 드리는 성당과 모든 주민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넓은 광장이 그것이다. 광장은 주민 소통과 축제의 장소다. 문득 우리나라도 새마을운동 주거 개선 사업을 했을 때 마을마다 광장을 하나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11시쯤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순례를 시작하려고 팜플로나행 버스를 타고 갈 때 순례자를 처음 목격한 곳이다. 그때 노곤하게 걷던 순례자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그도 아마 카미노를 열흘 이상 걸어서 이쯤에서 노독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컨디션은 그이보다 좋은 것 같다.

마요르 광장의 산따 마리아 성당 종탑 모서리마다 황새가 둥지를 틀었다. 종을 치면 깜짝 놀랄 만도 한데 보금자리를 꾸몄다. 신의 품이라 마음이 푸근한가 보다. 둥지 하나가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벨로라도에는 담장과 건물에 벽화가 많았다. 우리나라 벽화마을의 그림은 소형으로 아기자기한 데 비해 스페인은 대체로 큼직큼직했다.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라 뻬냐 성모 소성당


바위를 파서 건립한 라 뻬냐 성모 소성당 Ermita de Nuestra Senora de la Pena이 있는 전원마을인 또산또스를 거쳐 비암비스띠아에 도착, 바르 알베르게 산 로께Bar Albergue San Roque에서 하룻밤을 유숙했다. 민박집 비슷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스페인 본토박이였다. 손짓발짓 다 해가며 저녁, 내일 아침까지 1인당 15유로임을 알아듣고 나서야 서로 환하게 웃었다. 저녁 식사로 정통 스페인 요리가 나와 맛있게 먹었다. 우리로 보면 집밥인 셈이었다. 엄청 좋았다. 주인아주머니의 요리 솜씨가 마음을 빼앗았다. 맛있는 음식만큼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것이 드물다. 먹는 재미에 피로가 씻은 듯이 가셨다.

바르 알베르게 산 로케 여주인. 구글 번역기로도 서로 소통이 안 돼 애를 먹었다.


스페인은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서머타임 적용으로 한 시간 앞당겨진다. 오늘이 그날인데 카페의 벽시계는 예전 그대로이어서 긴가민가했다. 스페인 말이라도 할 줄 알면 시원하게 물어볼 텐데,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벨로라도에서 만난 순례자.



■ 레데시아 델 카미노;   카미노의 성모 성당Iglesiade Nuestra Senora del Camino

11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 가스띨델가도; 산따 마리아 라 레알 델 깜뽀 소성당Ermita Santa Maria la Real del Campo

중세에 순례자 병원에 딸려있던 부속 성당으로 18세기의 현관이 아름답다.


■ 빌로리아 데 리오하; 성모 승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

카미노의 성인인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가 세례를 받았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반이 있다.


■ 벨로라도; 산따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16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과 이슬람인들을 죽이는 산티아고상이 보존돼 있다. 종탑 모서리에 튼 네 개의 황새 둥지가 이채롭다.


■ 벨로라도; 산 뻬드로 성당 Iglesia de San Pedro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17세기 성당.


■ 비암비스띠아; 어느 성당

유서 깊은 성당으로 보였는데 메모를 빠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