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DAY | 비아나 > 나바레떼

2024. 12. 28. 04:25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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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8.(목), 맑음.
22.8km(186.7km) / 6시간 11분




오늘 카미노는 푸른 밀밭 대신 포도밭이었다. 오전 7시 비아나 알베르게 Andres Munoz를 나왔다. 오르막길인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산 뻬드로 수도원Monasterio de San Pedro’을 만났다. 13세기에 지어졌다는 수도원의 거대한 현관이 마치 어제 만들어진 듯 새것같이 잘 보존돼 있었다. 주택가를 가로질러 자동차전용도로까지 가는 동안 카미노 사인이 무수히 나타났다. 벽, 담장, 인도와 도로 바닥에 과하다 싶을 만큼 넘쳐났다. 길 잃는 순례자가 많아서인지 비아나 시민의 배려인지는 모르겠다. 우리에겐 도움이 컸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횡단하는 목조 육교를 건너 카미노로 들어서니 막 피기 시작한 노란 유채꽃이 바람 따라 출렁거렸다. 들녘을 수놓은 노란색 물감이 내 마음을 물들였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꽃이 되었다. 지금쯤 우리나라 남녘에도 유채꽃이 한창이리라.


두 시간쯤 걸어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큰 강을 만났다. 에브로강Rio Ebro이다. 강에 놓인 삐에드라 다리Puente de Piedra는 로그로뇨 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인 셈이었다. 일곱 개의 아치와 원통형 기둥이 있는 석조 다리를 늘어나는 교통량 때문에 1917년 콘크리트로 현대화했다. 다리에 서서 바라보는 도시의 미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로그로뇨 대성당La Catedral de Logroño(정식 명칭은 산따 마리아 라 레돈다 대성당Catedral Santa Maria la Redonda)의 쌍둥이 탑이 고전미를 더욱 높여주었다. 시가지에는 벽화와 동상들이 많았다. 순례자의 동상 앞에서 형상을 흉내를 내며 피로를 잠시 잊기도 했다.


로그로뇨는 ‘라 리오하’의 자치주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은 대서양 기후와 지중해 기후, 내륙의 메세타 지역의 영향이 모두 미치는 접점으로, 포도밭이 장관을 이루었다. 라 리오하의 자연은 리오하 사람들에게 포도주라는 값진 선물을 안겼다. 여기서 생산하는 적포도주는 세계에서 으뜸이라고 했다. 오래된 떡갈나무 통에 숙성한 양질의 제품은 색깔이 뛰어나고 적당한 산도와 섬세한 향으로 감칠맛을 더한다고 알려져 있다. 로그로뇨의 ‘포도주의 길La Ruta del Vino’에는 포도주 창고와 멋진 주점, 요리 가게가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아침이어서 우리는 카페에서 포도주 대신 커피를 마셨다.

로그로뇨 시가지를 빠져나오니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선 공원이 보였다. 그라헤라 저수지Embalse de la Grajera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딱딱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지만 산책과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구붓하게 이어진 게 시골길같이 정감 있었다. 언젠가 그리스 여행을 하면서 '이 나라 사람들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신의 나무로 여긴다'라고 했던 가이드의 말이 떠올라 애착이 갔다. 공원의 가장자리에 있는 저수지의 풍광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렸다. 나바레떼로 가는 오르막이 이곳에서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나바레떼에서 생장피드포르로 가는 도중 버스에서 보았던 대형 투우 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만 같이 늠름하고 당당한 형상이었다. 청도 소싸움이 생각났다. 우리나라 투우는 소와 소끼리 대결하는 데 반해, 스페인은 소와 사람과의 격투로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문화적 차이가 뚜렷하다.

투우 상을 지나 N-20a 도로를 횡단해 건너면 나바레떼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20여 분을 걸어 나바레떼로 진입하는 빈터에 봄꽃들이 지천이었다. 하늘거리는 풀꽃들이 흡사 나비 떼 같았다. 피로했던 심신에 나풀나풀 날아든 상큼한 레모나 C가 됐다. 고가 다리를 건너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오래된 유적지가 나왔다. 1185년에 지어져 4세기 동안 순례자에게 도움을 주었던 ‘산 후안 데 아끄레San Juan de Acre’ 교단의 순례자 병원 자리였다. 오랜 세월에 몸통은 사라지고 지금은 벽체 일부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바로 옆에는 돈 하코보Don Jacobo 와인의 거대한 저장고가 보였다. 돈 하코보 와인은 국제 와인 박람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어 ‘라 리오하’ 지역의 포도주가 세계적임을 암시한다. 점심때 곁들인 와인도 바로 ‘라 리오하’의 와인이었다.

오후 1시, 나바레떼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문이 꼭꼭 닫혀있었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중 창녕 부부가 배낭 없이 맨몸으로 도착했다. 비아나를 출발할 때 배낭을 동키Donkey(자동차로 짐을 보내는 것)로 보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며, 어디론가 통화를 하더니 아소프라 알베르게로 잘못 배달됐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온 그는 배낭이 너무 커 거의 매일 동키를 이용했는데, 배달 장소가 에러 났다. 부인은 작은 냅색만, 남편은 큰 배낭을 멘다. 얼마 지나 알게 됐지만, 무거운 배낭 탓으로 남편이 발목에 상처를 입어 부부는 카미노를 완주할 수 없었다. 안타까웠다. 카미노를 순례하려면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 공립 알베르게 출입문에 4월 1일부터 문을 연다는 메모를 뒤늦게 발견하고 우리(창녕 부부, 김○주, 우리 넷)는 길 건너 호스텔 비아 더 나바레떼에 짐을 풀었다.


샤워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산한 중앙광장에는 성모승천교회 La Iglesia de la Asuncion와 도공 기념물Monumento al Alfarero, 바르 Bocateria가 보였다. 일단 시장기부터 해결하려고 바르에 들러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푸짐한 샐러드가 먼저 나왔다. 그동안 채소를 먹지 못했는데 군침이 절로 돌았다. 우리는 싱싱한 샐러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식당 주인이 기뻐하며 서비스로 노란 술을 한 잔씩 내놨다. 저녁은 생닭을 공동구매 했다. 창녕 부부가 만든 닭백숙은 별미였다. 내일 아침용으로 조금 남기고 깔끔하게 해치웠다. 닭백숙이 꿀이었다.


전신에 스탬프 문신을 새긴 순례자의 벽화.


■ 순례자의 샘Fuente del Peregrino

마치 조그만 집을 연상시키는 순례자의 샘은 오래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뚜렷했다.


■ 로그로뇨의 ‘산띠아고 엘 레알 성당 Iglesia de Santiago el Real’

성당의 현관은 바로크 양식이며 벽감 안엔 산띠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전사 산띠아고) 상이 있다.


■ 도공 기념물Monumento al Alfarero

나바레떼에는 라 리오하 주의 유일하게 고대 도기 터가 남아있다. 동상이 우리의 도공 모습과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