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DAY | 라라소아냐 > 팜플로나

2024. 12. 24. 14:39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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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3.(토), 맑음.
18km(75.5km) / 4시간 10분



카미노는 단 하나의 경로로만 정해져 있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과 자전거 길도 따로 있어서 때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라라소아냐에서 팜플로나까지는 거리가 짧았다. 아침 햇살에 눈을 씻고 느긋이 라라소아냐를 출발했다. 100분 정도 걸어 사발디까Sabaldika에 다다랐다. 휴식하던 중 현지인을 만났다. 남자는 우리에게 가까운 길로 가라고 알려주면서 손짓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도로까지 나가는 길은 맞았지만, 경로를 벗어났다. 아마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은 것 같다. 아무튼 이방인에게 선뜻 길을 알려준 성의가 고마웠다.

라라소냐에서 팜플로나 구간은 아르가 강Rio Arga을 따라 이어졌다. 지금까지 본 스페인의 강은 폭이 좁은 개울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강폭이 넓은 큰 강도 많겠지만 아직은 작은 물줄기로 이루어진 개울 같은 내를 본 게 다였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개울물이 철철 넘쳐났다. 물이 풍부하니 마음도 풍성해지는 것 같았다. 작은 강에서 카누를 타거나 숭어낚시를 하는 그들의 여유로운 삶을 엿보며 눈맛을 즐겼다.



정오가 채 안 돼 막달레나 다리를 건너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성벽이 위용도 당당하게 나타났다. 팜플로나가 역사적인 큰 도시임이 실감 났다. 알베르게 오픈 시간이 되지 않아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팜플로나는 며칠 전 생장피드포르행 ALSA 버스를 탄 곳이다. 버스를 타고 떠났다가 산을 넘어 걸어서 다시 돌아왔으니 나름대로 의미 있다. 알베르게 문이 열렸다. 등록(9유로) 하고 침상에 배낭을 던져 놓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헤밍웨이 단골집 이루나 카페(노란색 건물)
이루나 카페 내부
생맥주 인기가 여간 아니었다. 맥주잔을 찬물로 씻고 따라주는 과정이 다이나믹하다.
헤밍웨이 흉상. 그가 1926년 출간한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소몰이 엔시에로가 소개돼 팜플루나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헤밍웨이 흉상, 소몰이 동상Encierro, 대성당 등 구시가지 여러 곳을 도보로 탐방했다. 헤밍웨이가 즐겨 애용했다는 카페에 앉아 맥주도 마셨다. 카미노에서 첫 번째 도시인 팜플로나는 나바라 왕국의 수도로 2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낯선 오래된 건축물들이 유서 깊은 곳임을 말없이 알려주었다.

생장피드포르행 터미널에서 만났던 윤○미 씨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전업주부로 카미노에 놀러 왔다고 했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여 가족을 물었더니 “있다, 사는 것이 답답해 나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시원하고 활달했다. 철학적인 심오한 답변 같아 더 묻지 않았다. 이유 불문하고 사는 게 숨 막혀 이곳으로 탈출해 온 용기가 대단했다. 그녀가 한국인끼리 저녁을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우리 넷과 이곳 알베르게에서 만난 손성일(유튜브 ‘걷는 남자Korea World Tail’ 운영자), 최인규(레스토랑 개업하고 싶은 총각 세프)까지 모두 일곱 명이었다. 조리할 재료는 마켓에서 공동구매하고 요리는 윤○미와 최인규가 맡았다. 알베르게 공용 식탁에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두 사람 덕분에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흰 쌀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까까머리 ‘걷는 남자’의 카미노 경험담을 들었다. 그의 걷기는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K사의 지원을 받아 걷는다지만, 직업으로 걷는 것이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느껴졌다. 윤○미는 카카오톡 ‘3월 카미노팀(3월에 산티아고 오는 한국인 그룹)’의 회원이었다. 며칠 뒤 그들과 합류하려고 팜플로나에 머무는 바람에 다시 조우할 수 없었다.

마사지단체에서 알베르게에 안마 봉사를 나왔다. 여성 마사지사 두 명이 순례자에게 50분씩 무료 마사지를 해주었다. 피로한 순례자에게 큰 선물이었다. 김상기와 나는 사전 신청하여 저녁 식사 후 마사지를 받았다. 고마운 마음에 팁을 주려고 했으나 극구 사양하므로 “땡큐 베리마치” 인사만 거듭했다.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동을 하였다.

까스띠요 광장. 해거름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가뿐해진 기분으로 까스띠요 광장Plaza del Castillo에 나갔다. 그곳은 바르, 카페, 레스토랑 등 여러 상점이 있는 주 광장이었다. 20만 시민이 다 모인 듯 가게마다 손님으로 넘쳐났다. 주점이 꽉 차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서 선 채로 즐겼다. 한 손엔 담배, 한 손엔 술잔….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막연히 부러웠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끊고 순례를 시작했다. 이 나라는 엄마가 담배를 피우면서 유모차를 끌고, 아이 기저귀도 갈아주었다. 젊은이들이 악기를 불고 두드리며 떼 지어 몰려다니며 즉흥연주를 했다.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연주에 화답하듯 가무를 하며 따라다니는 모습은 생경한 구경거리였다. 우리도 경쾌한 연주에 홀려 한동안 서성거렸다.


늦게 숙소에 돌아오니 페루에서 팜플로나로 날아온 김○혜(29세), 론세스바예스에서 팜플로나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김○주(31세)가 와 있었다. 씩씩한 두 젊은이, 알고 보니 안동 김씨에다 대구 사람이었다. 타향에서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데 이국땅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만나다니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 팜플로나 자료(웹에서 발췌 요약)

■ ‘산 페르민San Fermin’은 팜플로나의 수호성인이다.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ín는 7월 6일 정오 까사 꼰시스또리알Casa Consistorial(시청사) 발코니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7월 14일 자정에 노래 뽀브레 데 미Poble de mi(가엾은 나)를 부르며 축제는 끝이 난다.


축제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소몰이로 알려진 엔시에로Encierro다. 이 축제는 투우에 사용할 소들을 운반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도시 인근의 소 우리에서 투우를 풀어 투우장까지 몰고 가는 과정에서 생긴 행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 기간 중 매일 아침 8시 정각에 산토 도밍고 광장Plaza Santo Domingo에서 투우장까지 825m의 거리를 투우들과 함께 달린다. 이 축제는 13세기에 시작되었다. 산페르민 축제는 ‘엔시에로’ 외에도 가장행렬, 음악회, 불꽃놀이 등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 날을 맞추어 카미노를 계획한다면 전율을 느낄 것 같다.

■ 아르가 강 위의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

순례자들은 이 다리를 건너 팜플로나로 들어가게 된다.


■ Murallas 성벽


16세기 펠리페 2세가 건설한 이 성벽은 적들로부터 팜플로나를 지켜주었다. 5각형 형태의 수비 거점이 있는 성벽으로 역사적 의미가 많은 유적이다. 이 성벽이 함락된 것은 역사상 단 한 차례였다. 1808년 2월 18일이었다. 함락되기까지 단 한 번의 발포도 유혈 사태도 없었다.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자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꾀를 내어 눈싸움하는 척했다. 이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고 평화롭게 보여 성벽을 방어하던 스페인 군사들이 놀이에 끼기 위해 성문을 열었다. 프랑스인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눈 속에 숨겨놓았던 무기를 꺼내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아 무혈로 성벽을 함락했다. 성벽 주변에는 현재 ‘라 부엘따 델 가스띠요 La Vuelta del Castillo’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까사 꼰시스또리알 Casa Consistorial


팜플로나 시청사로 1760년에 지어졌다. 매년 7월 6일이 되면 발코니에서 산 페르민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내부 문틀 위에는 ‘이 문은 모든 이를 위해 열려 있으며 마음은 더 많이 열려 있다.’ 라는 나바라의 까를로스 3세의 아름다운 문구가 새겨져 있다.

■ 팜플로나 대성당 Catedral Pamplona


산타 마리아 대성당La catedral de Santa María이라고도 불린다. 로마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 성당은 15세기 고딕 양식과 18세기 신고전주의 파사드Fasade(성당의 주 출입구를 포함한 정면의 벽면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립자 까를로스 3세Carlos III와 왕비인 레오노라Leonor의 무덤이 있다.

■ 알베르게Albergue

알베르게 헤수스 이 마리아Jesus y Maria. 114개의 침상을 갖추고 있다.


알베르게는 순례자peregrino만을 위한 숙소다. 같은 의미로 '오스삐딸 데 뻬레그리노스Hospital de peregrinos‘ 또는 '레푸히오Refugio’라고도 한다. 주방, 샤워시설, 화장실 등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보통 여러 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 형태다. 편의시설 대부분은 남녀 구분이 없이 선착순으로 배정한다.
가격은 사설 알베르게가 조금 비싸며 아침 또는 저녁 식사를 유료 제공하기도 한다. 개방 시간은 보통 정오부터 오후 4시 사이에 문을 열고 밤 10~11시쯤 문을 닫는다. 운영주체에 따라 공립 알베르게(알베르게 무니시빨Albergue Municipal), 종교단체 산하 알베르게(알베르게 빠로끼알Albergue Parroquial), 산티아고 협회 알베르게(순례 경험이 있는 자원봉사자(오스삐딸레로hospitalero)가 운영), 사설 알베르게(알베르게 쁘리바도Albergue privado)로 분류된다. 알베르게 이외의 숙소로는 시골의rural 집casa이란 뜻인 자기 집을 개조한 까사 루랄Casa rural, 우리의 민박과 같은 곳인 뻰시온Pencion, 저렴한 대중숙박 시설인 오스딸Hostal, 호텔인 오뗄Hotel, 오래된 성이나 저택, 수도원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국영 호텔로 개조한 빠라도르Parador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