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4. 00:55ㆍ산티아고 순례길
2019.3.22.(금), 맑음.
29.1km(57.5km) / 7시간 56분
오늘은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레알 콜레히아타 수도원)에서 라라소아냐까지 걸었다. Casa Sabina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친절한 여종업원과 파이팅을 외치며 07:30, 길을 나섰다. 성당을 벗어나자,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790km라는 표지판이 큼직하게 세워져 있다. 시작이 반이라데, 힘을 불끈 냈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은 순하고 평탄했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가 이 숲길을 지나갔을까. 이 길은 성숙한 인격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도정의 길이었으리라. 햇살을 받은 나무숲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솔솔바람 사이로 우리의 그림자도 빠져나갔다.
카미노에서 외국인을 많이 대하다 보니 이제는 “부엔 카미노Buen Camino” 말이 쉽게 나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했다. 수비리Zubiri로 가는 도중 통과한 부르게떼Burguete-Auritz는 헤밍웨이가 머무르며 그의 첫 장편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했다는 마을이었다. 수비리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바르 Bar Valentin에 들어갔다. 좁은 식당 여기저기에 테이블을 차지한 노인들이 카드놀이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동네 어르신 같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나왔는데 주스가 너무너무 맛있었다. 여기 오렌지주스는 스페인에서 최고일 것 같았다. 주스 생각에 걸음이 자꾸만 늦어졌다.
무인 쉼터에서 크로아티아에서 온 ‘장인과 사위’를 만났다. 사위가 “장인이 카미노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해서 모시고 왔다.”라면서 “와이프는 집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니 활짝 웃었다. 이들과 며칠을 함께 걸었다. 장인은 우리 또래 같았는데 쉽게 지쳤다. 사위가 힘들어하는 장인을 위해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 타기로 결정했다. 이국 사람이었지만 효심이 지극한 청년이었다. 아쉽게도 우리와 헤어졌다.
라라소아냐에서 숙박비가 싼 공립 알베르게는 4월부터 영업하려는지 문을 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사설 알베르게 San Nicolas에서 짐을 풀었다. 공립보다 넓고 깨끗했다. 거실벽에 붙은 대형 카미노 안내도에는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38개 마을과 도시가 표시돼 있었다. 김상기가 마켓에 갔다가 주인과 금세 친해져 식품을 가득 사 들고 왔다. 먹거리가 넉넉하니 어둑발이 내릴 때까지 담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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