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주막에서

2024. 9. 27. 07:53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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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파하고 곧 바로 집으로 향하기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뒤풀이하면 정이 더 간다. 커피도 괜찮고, 술이면 더 좋다. 술을 좋아해서지 마신다고 꼭 넘치지는 않는다.

오늘 동호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어물쩍하게 섰는데 K 선생님이 손을 잡아끈다. 한잔하자는 신호였다. 특별한 주제가 없다면 둘은 재미가 적다. 헤어지는 사람들과 수인사 나누는 회장님에게 눈짓을 보냈다. 범사를 수용하는 회장님이 거절할 리 없다. 멀리 갈 시각이 아니어서 걸어가며 술집을 찾다가,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바보 주막>이 눈에 띄었다. 상호가 좀 별났지만, 어둠이 짙어가는 밤, 서둘러 들어갔다.

바보 주막은 -벽에 붙은 포스트를 보니- 십여 년 전 개업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는 주점이었다. 상호는 바보 노무현 별명에서 따와 지었고, 경상도(봉하) 쌀과 전라도(담양) 물로 빗은 '봉하 막걸리'도 공급하는 이를테면 동서 화합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건물이 시인 이상화의 친형인 '이상정 장군의 고택'이었다. 한 골목 안에 이상화 고택도 있다. 우연히 유서 깊은 고택의 주점에서 회장님, K 선생님과 함께 우리들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다. 소맥과 문어숙회를 주문했다. 소맥은 시원했고, 문어숙회는 질겼다. 곁들이 번데기가 씹기에 부드러워 젓가락이 자주 갔다. 가난한 시절 먹던 번데기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요즘은 서민 식당이 아니면 맛보기 쉽지 않다. 문어숙회를 축내려고 소맥을 추가했다. 회장님이 들어오면서 미리 계산했는데 나가면서 초과한 금액을 또 냈다. 모임의 회장으로 체면 다 차리면 힘들 것 같다. 가만히 계셔도 되는데.... K 선생님이 보답 차원으로 로또를 산다기에 복권방에 갔더니, 문이 닫혔다. ㄷㅐㅂㅏㄱ ㅣ굴러들어 오나 싶다가 에스티오피, 멈추고 말았다. 이 나이에 아직도 로또라면 눈이 번쩍하는 내가 정상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앞서 마친 동호회 모임이 즐거웠고, 회장님 뒤풀이까지 얻어먹었으니 우리 모임을 경애하지 않을 수 없다. (2024.9.23.)

대구 중구 약령길 25-1 (계산동2가)
마당의 담장 벽화
K 선생님 소맥 제조 중.
문어숙회(35,000원)
얼마 전에 시인이 다녀갔다. 썼다하면 명문.
이상정 장군 고택을 알리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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