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9. 04:24ㆍ입맛
석양 일배(夕陽一杯) 즐기는 형님이 오랜 친구 한 사람을 더 불러냈다. 이유는 뻔했다. 우리는 형이 말하는 ‘보고 싶다’가 마시고 싶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걸 잘 안다. 넷이 만나 단골집으로 갔다. 빈자리가 있는데도 사장님이 기다리라고 했다. 알고 보니 예약석이었다. 미안한 얼굴로 20분쯤 기다려 달라고 했다. 넓지 않은 주점에 전에 없던 대기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한동안 들르지 못했다. 그 사이 단골집 분위기가 변해버렸다. 서글서글한 사장님 선한 눈빛은 그대로고, 탁자와 접시, 숯불 그릴도 제자리에 있고, 두툼한 고기 익는 냄새도 변함없었다. 대기석에 앉아 유심히 보니 좌석에 앉은 손님들이 학생인 듯했다. 몇 명씩 들어오는 사람들도 여학생이었다. ‘아니, 소줏집에 웬 학생들이?’ 싶어 사장님에게 물어보았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아이돌 가수 세븐틴 팬들이 왔다면서, 벽 쪽을 눈길로 가리켰다. 전에 없던 자그마한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아이돌 팬이라면 대부분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떼 지어 들어와 자연스럽게 아지트가 되었다. 내용 아는 사람에게 들으니, 세븐틴 멤버 한 명이 다녀간 후 인터넷에 후기 글을 올려 팬덤이 몰렸다고 한다. 멤버들의 생일날에는 파티까지 연다니 열성이 놀랍다. 왜 오느냐 물음에 여학생은 "성지(聖地) 순례 왔다"고 대답했다. 연예인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세븐틴은 K-POP 대표주자 중 하나로 2015년 데뷔한 13인조 다국적 보이그룹이다.
단골집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우리는 석양 일배 장소를 다른 단골집으로 옮겼다. 빼앗긴 단골집에 다시 갈 수 있으려나. 학생들에게 술은 팔지 않고, 음료만 팔아도 장사가 잘돼 보여 흐뭇했다. (with: 뽀ㅇ형, 손명ㅇ, 현제ㅇ, 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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