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별미 과메기

2022. 12. 27. 10:13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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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저녁, 지인 모친상에 조문 갔다. 장례식장을 나와 문상하러 온 지인들과 1차를 했다. 차를 가져와서 국밥만 먹어 맹숭맹숭한 박ㅇㅇ 사진작가. 자리를 파하자 한 잔 더 하자며 유혹했다. 정에 약한 몇 사람이 박 작가 자택까지 따라가 주차하고 주점에 갔다. 안줏거리를 찾으려다 벽에 써 붙인 '과메기* 개시'를 보고 주문했다.

잠시 기다리니 '배지기'* 과메기와 함께 배춧속과 생미역, 파, 김, 마늘, 풋고추, 된장, 초장이 곁들여 나왔다. 생뚱맞게 번데기도 한 종지 나왔다. 네 사람은 푸른 병의 맑은 위장약을 잔에 부어 즐겁게 부딪쳤다.

고향 감포 바다를 전문 촬영하는 박 작가가 과메기 유래를 말했다. "동해안의 한 선비가 겨울철에 과거를 보러 가던 중이었다. 바닷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여 말라 죽어 있는 생선을 발견했다. 허기를 달래려고 찢어 먹었더니 맛이 좋았다. 과거를 치르고 내려온 선비는 겨울마다 청어나 꽁치를 그렇게 말려 먹었다." 우리는 그 선비가 과거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다면 과메기가 생겨나지 못했겠다면서 한바탕 웃었다.

처음 과메기를 맛본 것은 90년대 초쯤이다. 범어네거리 인근의 '포항물회' 식당에서였다. 당시에는 과메기가 생소했다. 비릿하면서 얄궂은 내음과 물컹한 식감으로 손이 가지 않았다. 포항 사람인 사장님이 워낙 정갈하게 상차림을 했고 동료들도 먹성이 좋아 차츰차츰 식미를 알게 됐다. 그때 과메기는 '통마리'*가 대부분이었다. 포항 죽도 시장에서 그것을 한 두릅 샀더니 집사람이 손질하기 꺼릴 정도였다. 생선을 잘 다루는 사람도 껍질 벗겨 내는 건 쉽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통마리에서 배지기로 시나브로 대체되고 있다.
과메기는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별맛이다. 지금이 제철인 과메기, 찬 바닷바람에 말린 꽁치가 미식가의 입맛을 기다리고 있다. (with: 해덕, 자현, 갑기형)

* 과메기: 두 눈이 마주 뚫려 있는 고기의 눈을 꿰었다는 뜻으로 관목어(貫目魚)라고 하는데 발음의 변화를 거치면서 과메기로 변했다. 생선 이름이 아닌 만드는 방법이다.
* 배지기: 수입산 냉동 꽁치로 말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배를 갈라서 머리와 내장을 빼고 2~3일 말린 것.
* 통마리: 근해 꽁치로 내장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15일 이상 말린 것. 내장 지방이 살 속에 베어 담백하고 고소하다.

 
 
배지기 과메기. 과거에는 통마리거나 통마리를 반토막 내 상차림 했다.
구색은 갖추었으나 허술하다. 번데기는 생뚱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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