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바위에서 노루를 만나

2024. 2. 12. 23:22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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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듯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노천명의 '사슴'이 떠오르는 찰나였다. 눈앞에 노루가 나타났다.

아침밥을 먹은 후 집사람이 갓바위에 가자고 했다. 불자인 아내는 정초 기도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불교도가 아니어서- 망설였다. 작년에 재미 삼아 경산 와촌에서 갓바위 올라가는 계단 숫자를 헤아려 보았더니 893개였다. 확신이 서지 않던 차에 다시 세어볼 요량으로 따라나섰다.

갓바위 행 803번 버스로 환승한 후 여남은 정류장을 거치자, 승객이 만원이 됐다. 작은 가방을 메고 갓바위에 가려는 보살과 처사가 많았고 간간이 등산객들도 탔다. 와촌 갓바위 주차장에 도착해 갓바위로 오르는 수많은 사람을 보니 정초의 갖는 만사 대길 발원 열망을 실감했다.

주차장에서 계단이 시작되는 곳까지 오르막은 깔딱고개였다. 숨을 매우 거칠게 만들었다. 첫 계단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둘 세기 시작했다. 갓바위까지 전과 같이 893계단이었다. 갓바위는 마치 설 대목 시장처럼 붐볐다. 기도하는 사람, 공양미와 양초를 사려는 사람, 일 년 기도 접수처의 혼잡 등… 다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기도를 끝낸 아내와 함께 또 한 번 계단 개수를 세었다. 구간을 정하여 서로 확인하면서 내려갔다. 역시 893계단이었다.

800여 계단을 내려왔을 때 갑자기 노루가 나타났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단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에 관[뿔]을 썼고 동그란 눈망울은 무심해 보였다. 털은 낙엽과 같은 보호색이고 꼬리는 없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어떤 이는 사과 조각과 빵 조각을 던지기도 했다. 노루는 덤덤하게 몇 분간 모델이 돼 어슬렁거리다 숲으로 사라졌다. 정초에 자연에서 뿔 가진 노루를 만난 것이 길조 같아 기쁘다. 용의 머리에 사슴(노루)뿔이 있지 않은가.  (2024.2.12.)

* 사슴이 아니고 노루입니다. 사슴은 꼬리가 있고 노루는 없다고 하여 정정하였습니다. (2024.2.13.)

와촌 갓바위 주차장
첫 번째 계단 시작
563계단째 삼성각
893계단째 도착한 갓바위.
불상의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나 머리 위에 마치 갓을 쓴 듯한 자연판석이 올려져 있어 속칭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알려지고 신앙되어 왔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대표적인 불상.
갓바위에서 내려오면서 조우한 사슴.
사슴보다 사람이 더 놀랐다.
배가 고파 나타난 것은 아닌 듯.
계단 앞 3~4m까지 접근한 사슴.
털색이 낙엽과 같은 보호색.
사람들이 던진 사과 조각을 냄새만 맡았다.
꼬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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