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9. 07:05ㆍ입맛
직장에 다닐 때는 과중한 업무와 잦은 야근에 시달렸다. 일하다 고달프면 '공부를 이만큼 열심히 했으면 이 짓은 안 하고 살 텐데…' 하며 막연히 회한에 잠기기도 했다. -염색을 한 분도 있지만- 머리카락이 허옇게 센 지금 -머, 후회가 없진 않지만- 그저 가족과 아는 사람 모두 건강하고 지인들과 담소 나누며 산다. -능력이 안 돼- 마음을 비우니 돈도 크게 부럽지 않다. 늦으나마 인제 와서야 행복이 평범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젊은 날의 선배 동료들이 추석 쇠고, '할매 칼국수'에서 만났다. 대부분 머리카락이 새하얗다. 세월이 흘렀어도 만나면 반갑고 즐겁고 감사한 분들이다. 이야기꽃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 애달팠던 이야기가 나와도 예쁜 꽃이 활짝 피어 함박웃음 꽃바다를 이루니 말이다. 세월은 모든 희로애락을 거두어 간다. 선배 한 분이 동기회 팔순 잔치에 가니 반이 다이(die)했더라면서 인생무상을 덤덤히 얘기했다. 삶이 속절없어도 이야기꽃은 피어났다.
명덕역 물베기* 거리의 할매 칼국수는 15년째 단골이다. 주인과는 젊었을 때 인연을 맺었는데 지금은 국숫집 사장이 됐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밀가루 음식을 꺼린다는데 이 집의 칼국수에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는다. 덤으로 나오는 한 웅큼 보리밥도 별미다. 어슷하게 썬 돼지고기는 미각을 사로잡고 배추전은 어디에서도 이 집만큼 맛있게 먹어보지 못했다. 모임을 파하려는데 주인이 나타나 조니 워커 블랙을 한 병 건네준다. 그것마저 비우니 ○형이 십 년은 젊어졌다면서 -酒님을 찾아- 뽀창 형 따라 3호선 하늘 열차를 탔다. (2023.10.13.)
* 물베기: 과거 명덕역 인근이 논밭일 때 영선 못에서 하천으로 흘러내리는 물로 그 일대가 항상 흥건했었다. 땅에 물이 늘 배 있다고 해서 '물베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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