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5. 08:37ㆍ입맛
두류공원 인근의 어탕국수 집에 점심 먹으러 갔다. 맛집은 늘 손님으로 붐비기 마련이다. 번호표를 받아 밖에서 대기했다. 식당 앞에 스마트폰 사진을 인화하는 트럭이 있어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과 휴대폰 사진을 인화했다. 나도 폰에서 산티아고 순례 때 찍은 사진 하나를 찾아내 만 원짜리 작은 액자를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국숫집의 신호를 받았다. 들어가니 종업원이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훔치는 중이라 카운터 앞에 잠시 대기했다. 손님들이 빽빽이 식사 중이고, 카운터 벽에 젊은 주인이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큼지막하게 인화해 붙여놓았다. 사진 하단부에 '우리 아부지'라는 글씨를 자랑스럽게 새겨 넣었다. 아버지 사랑이 유달리 애틋한 것 같다. 우리가 앉을 테이블 벽에도 작자미상의 「아버지」라는 수필까지 사각 현수막으로 제작해 게시해 두었다.
1996년인가? 김정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가 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당시 40대였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한편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마음에서 단숨에 읽고 감동한 기억이 생생하다. 해맑은 젊은 주인을 보며 잠깐이나마 그때의 감상에 빠졌다.
국수가 나왔다. 황토색 국물을 먼저 한 숟가락 떠먹으니 뜨근뜨근한 것이 깊은 맛이 우러나면서 민물고기 내음이 얼핏 났다. 진백이 어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몇 숟갈 계속 떠니 속까지 시원했다. 푹 삶긴 국수는 면이 가늘지도 굵지도 않았다. 걸쭉하고 부드러워 후루룩 면치기하기에 적당했다. 주인이 각자에게 하나씩 준 초피를 살살 뿌렸어도 구미가 변하지 않았다. 맛집 어탕국수가 입에 맞아 국물도 남김없이 먹었다. 먹는 동안에 일하는 젊은 주인을 지켜보면서 돈 많이 벌어 효도하고 자식 잘 키우며 행복하길 소망했다. (2023.10.12.)
어탕국수가 삼삼하게 기억나 '어탕국수삼계'에 갔다. 상호에서 어탕국수는 알겠는데 어탕국수삼계가 무엇일까 궁금해 주인장에게 물었다.
"어탕 국물에 닭을 삶은 것, 어탕 삼계탕"
이라고 했다. 우리는 친구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하 웃었다. (2023.12.13.)
'입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침회 식당의 여주인 (12) | 2023.10.20 |
---|---|
물베기 거리, 할매 칼국수 (10) | 2023.10.19 |
아나고 직화구이 (8) | 2023.10.13 |
남강 장어의 전복장어탕 (4) | 2023.10.07 |
칠곡휴게소 한미식당 (3) | 2023.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