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0. 11:40ㆍ입맛
예전에 가끔 다니던 레스토랑이 이전해 버려 잊혔는데, 얼마 전 우연히 이사한 곳을 발견했다. '목요일 식사 모임'에서 같은 값이면 그곳에 가보자고 해 '부엌이야기'에 모였다. 골목 모서리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식당의 상호가 수수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홀은 'ㄴ'형으로 별로 넓지 않았고 어두운 톤의 실내 장식이 느낌보다 편했다.
STEAK & PASTA 부엌이야기. 상호가 예사롭지 않다. 부엌이란 먹고 마시는 음식을 만드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불과 물, 각종 요리 도구와 음식 재료들이 가득하다.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풍부하겠는가. 사람살이에는 부엌에서 파생한 말이 적지 않다. 일자리를 '밥그릇'이라 하고, 부자로 태어나면 '금수저'라 비유하기도 한다. 목숨 끊어지는 것을 '밥숟가락' 놓았다거나 '부뚜막'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둥 부엌이 삶을 지배한 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 부엌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상호이니만큼 주인의 장사 철학이 조금은 상상되었다.
다섯 명이 문 앞에서 만나 함께 들어갔다. 레스토랑에서는 보통, 여럿이 함께 식사하면 이것저것 시켜 나눠 먹기도 하는데 사내들은 참 우습다. 짜장면 시킬 때처럼 똑같은 메뉴로 통일했다. 단출하고 갈등 없는 주문에, 깊은 맛이 밴 듯 '부드러운 버섯구이와 다진 소고기 스테이크(13,000원)'가 나왔다. 맥주까지 마시며 즐겼다. 운동선수는 시합으로, 셰프는 요리로 자신을 증명한다. 부엌이야기는 우리들 점심상에서 그것을 보증했다.
후식용 커피를 마시며 탁자에 놓인 종이 테이블 매트의 첫머리에 쓰인 글자에서, 부엌이야기의 단편을 읽을 수 있었다. <작지만 정갈한 공간과 정성껏 준비한 소박한 음식. 부모님께 대접하고, 자식들을 먹인다는 마음으로 준비. 합성조미료, 액상소스보다 신선한 재료들로 고아 낸 육수를 사용> 한다는 거였다. 부엌이야기가 이만하다면 나는 흡족하다. 다음에 또 가야겠다. (202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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