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신선함, 서해게장집

2023. 12. 22. 08:13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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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넷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점심을 먹는다. 이번 달에는 S가 유사. 고민해 잡은 식당은 범어역 인근의 '서해게장집'이었다. 만나기 편리해 베리굿이었다. 대구에서 음식점의 상호에 '서해'가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남해'가 조금 보이고 '동해'는 더러 있다. 이유는 거리 탓으로 보인다. 나는 서해라는 말과 글자하고 친근하다. 청춘일 때 난생처음 맞닥트린 타향이 전남 영광군 바닷가이기에 그곳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목포는 항구, 영광은 서해다.

'서해게장집'에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실내는 넓지 않으나 깔끔했다. 우리 테이블에는 예약 표식이 얹어 있고 포장지에 든 수저가 놓여 있다. 반대편 가장자리에 남녀 손님이 식사 중이었다. 점심 시각이 방금 지났지만, 한산했다. 친구를 기다리다 수저 포장지의 한시가 눈에 띄어 검색해 봤다.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


취한 손님이 비단 적삼을 잡아당기니

손길 따라 비단 적삼이 찢어졌다

비단 적삼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고마웠던 정까지 끊어질까 두렵구나
 
매창 이향금(1573~1610, 기생, 여류시인)의 술에 취한 손님께 드린다[贈醉客]는 시였다. 저고리를 여인에게 선물하고도 취해 실수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경계할 일이다. 웹을 검색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

친구가 모였다. 여주인 권유로 모듬 스페샬과 알배기 정식 두 개를 주문했다. 검은 간장의 액체가 넘실거리는 꽃게장에서는 바닷내음이 났다. 서해 현지에서 먹방 하는 비주얼 같았다. 모듬은 기본 꽃게장에 새우장, 연어장, 전복장이 특별로 추가돼 일미를 보탰다. 곁들이 양념게장과 어리굴젓, 버터계란 알밥은 이 중의 별미였다. 입맛을 사로잡는 서해게장은 짜고 달큰한 맛이었다. S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고향 음식을 먹은 듯했다.  (2023.12.20.)

모듬스페셜
알배기 간장 정식(오른쪽)
양념게장, 어리굴젓, 버터계란 알밥 등
달구벌대로 480길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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