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9. 00:09ㆍ입맛
진골목의 백록에서 A 원장님 덕분에 동호회원 아홉 명이 저녁 식사를 했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데 억시기 오랜만인 것 같았다. 연말 탓일까? 음식을 먹으면서도 잡담이 끊이질 않아 실컷 웃었다.
백록 안방에는 옛날 영화 포스터 이십여 개가 즐비하게 붙어 있었다. 비닐 커버까지 씌워 깨끗했다. 신성일, 엄앵란, 신영균, 최은희, 김지미, 문희, 김진규, 김희라 등 대스타의 왕년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제목은 하나같이 자극적이다. 애마 부인, 그림자 없는 여자,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어느 부부, 슬픔을 외면할 때, 산 색시, 돈, 속 눈썹이 긴 여자 등 포스터는 왜 여자의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애 타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애마 부인'을 愛馬로 알았는데 포스터를 보니 愛麻였다. 말 타면서 대마초를 즐겼나 보다. 현재의 백록은 작은 식당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한 시절을 풍미한 유명 요정이었다. 달빛에 젖어 색이 바래버린 남 모르는 스토리가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처럼 엄청나게 많았으리라.
백록이 자리한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방언이다. 종로에서 경상감영까지 이어지는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골목이다. 현재는 골목 일부가 남았다. 근대 들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살았던 부자들 동네로 부귀영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듯이 고풍스러운 한옥들은 시대에 밀려 사라졌으나, 그 명성과 흔적은 아직도 떠올릴 수 있다. 입가심 하러 들린 진골목의 명소인 미도 다방은 늦은 시간에도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주변 커피숍의 공세에도 버티어내는 게 신기했다. 정인숙 사장의 미소와 센베이* 과자 서비스, 시니어의 애정이 삼위일체가 되어 견디는 거겠지…. (2023.12.7.)
* 센베이 : 일본에서 온 건과자(乾菓子)의 하나. 밀가루나 찹쌀가루, 달걀, 우유 따위를 묽게 반죽하여 구워 만든다. 맛을 내기 위해 깨나 김, 파래 가루를 섞기도 한다. 미도 다방에서 서비스로 아낌 없이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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