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째 꽃게장의 추억

2023. 12. 16. 00:55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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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내리다 늦은 오후에야 그쳤다. 티스토리 이웃 피드에서 본 돈코츠라멘을 사려고 집사람과 이마트에 갔다. 밀키트 판매대를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다 젊은이가 게장 파는 것이 보였다. 100g 3,980원인데 50% 할인한다기에 간장으로 1kg을 담았다. 바코드를 붙이는데 서해 꽃게인 줄 여겼는데 외국산이다. 살짝 거시기했는데 젊은이가 밝은 모습으로 "방금 만든 것이니 다섯 시간 후나 내일 먹으면 더 맛있다"라면서 건네기에 그냥 받았다.

불현듯 잊고 있던 꽃게장의 추억이 생각났다. 꽃게장은 군 복무할 때 처음 만들어 먹었다. 서해 바닷가 초소에 근무할 때다. 서해는 간만의 차이가 심해 썰물 때는 바닷물이 뭍에서 보통 1km는 밀려 나간다. 얼마나 신기한가. 바다는 펄 바닥 민얼굴을 드러내고 물에 잠겼던 갯바위 아랫부분도 나타난다. 펄은 단단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찰흙보다 부드러워 발이 허벅지까지 빠지기도 한다. 갯바위 부근은 뭍과 가까워 딴딴하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 양동이를 들고, 반피장갑을 끼고 갯바위로 나가 구멍 속에 손을 넣으면 꽃게가 물었다. 손을 빼내면 꽃게가 딸려 나온다. 한 양동이 꽃게를 잡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잡아 온 꽃게는 -인근 주민에게 배운 대로- 맑은 물에 대충 흔든 후 부엌칼로 집게를 잘라낸 후 껍질째 잘게 다졌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꽃게를 다지고 나면 칼날이 다 빠져 부엌칼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껍질째 다진 꽃게는 소금, 고춧가루와 양념을 적당히 섞어 일주일쯤 숙성한 후 먹었다. 초소 근무는 밥을 직접 해 먹어야 했는데 다진 꽃게장은 고급 사제 요리인 셈이었다. 무쇠도 녹일 장정(壯丁)이니 맛이 기가 막혔다. 갖은양념을 넣은 요즘 게장에 비할 바 없을지 모르지만, 껍질째 직접 만든 게장은 먹거리 부족한 시절의 완벽한 반찬이었다. 전역 후에는 <껍질째 꽃게장>은 먹어보지 못했고 본 적도 없다. (2023.12.15.)

이마트에서 산 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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