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 치어잡이와 탐조등

2023. 5. 25. 10:40일상다반사

728x90

그저께 운천이 후배 아무개가 장어 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다면서 장어에 관해 말했다. 맞장구치며 점심을 하는 동안 옛일이 떠올랐다.

1973년 해안 경비 초소에서 군 복무할 때다. 그곳에 야간 바다 감시용으로 5kW 로빈 가솔린 발전기로 불을 밝히는 탐조등이 있었다. 카본*을 사용해 불빛이 엄청나게 밝았다.

늦여름이었던가? 밤에 인근 주민들이 바닷가로 몰려나와 횃불을 들고 장어 새끼를 잡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민물에서 부화한 치어가 바다로 나가는 것을 잡으려는 것이다. 가족들이 한 팀이 되어 자녀는 횃불을, 엄마는 치어 담을 통을 들고, 아버지는 그물질했다. 바늘이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반두로 갓 눈 뜬 치어를 잡았다. 장어 새끼는 실 같이 가늘고 투명했다. 1~2cm 되는 몸 끄트머리에 까만 점 두 개가 찍힌  눈이 아니었다면  그냥 물에 떠다니는 부유물에 불과했다. 그저께 친구는 장어 이야기를 하면서 막 부화된 새끼를 '현미경으로 본 정자 모양'이라고 표현했다. 적절한 묘사에 함께 웃었다. 치어는 하도 가늘어 반두에 잡혀도 여간 조심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횃불이래야 나무 막대기에 헌 옷가지를 묶고 기름을 먹여 불을 밝히는 게 전부다. 바다가 잔잔해도 번득이는 불빛 때문에 눈이 아프도록 부릅뜨야 고물거리는 것을 겨우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 대만에서는 장어 양식이 이루어졌으나 우리나라는 기술 개발이 되지 않아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곳에서 치어를 잡아 성어로 키웠다. 주민들이 새끼를 잡아두면 다음 날 아침 수거 꾼이 지프차를 타고 와 거두어 갔다. 치어의 무게는 금처럼 온스로 달았고 가격이 금값보다 비쌌다.
장어 새끼를 잡는 기간이 짧았다. 초소장과 상의해 주민들이 밤에 치어를 잡을 때 탐조등을 비춰주기로 했다. 대낮같이 밝아진 바다에 주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초소병들은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일약 인기 대열에 올랐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장어 양식을 하니 치어 잡는 진풍경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추억이 그립다.

* 카본(carbon): 아크등, 전극 따위에 쓰는 탄소봉.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순에 이룬 소망  (1) 2023.05.28
그때로 가고 싶다  (0) 2023.05.27
아침의 멧비둘기  (0) 2023.05.24
무료 퇴치 걷기  (0) 2023.05.24
정호승 문학관에 다녀오다  (0) 202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