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破紙) 모으는 노인

2023. 5. 19. 03:17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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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 년 전 친구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동안 살던 마당 넓은 주택을 철거해 고물상을 열었다. 수익 난다는 겉말을 듣고 뛰어든 것이다. 전문가 직원을 채용했지만, 고생만 실컷 하고 칠 개월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가끔 고물상에 가 봤다. 특성상 너저분하고 잔손질이 많아 쉴 틈이 없었다. 비닐류와 페인트 통을 빼고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낡은 물건이나 옛것이 들어오면 분리해 부품별로 따로 모았다. 엄청 힘들고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수집한 파지는 무게가 더 나가도록 물을 뿌렸다. 물 먹인 소는 위법이지만 물 먹인 종이는 그렇지 않았다. 파지는 kg에 천 원이 안 됐다. 리어카나 자전거로 파지를 싣고 오는 노인 대부분이 파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영감님에게 막걸리를 사다 주려고 삼천 원만 벌면 일을 마치는 낭만 할머니, 며느리 전화 받고 리어카를 맡기고 부리나케 떠나는 할머니도 있었지만, 늘그막의 삶에 지친 분들은 측은해 보였다.
친구는 노인들에게 막걸리나 음료, 과자를 제공했는데, 목을 축이면서 넋두리 삼아 세상살이를 들려주었다. 자녀에 관해서는 말문은 열지 않아도 현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시내에 나갔다가 파지 리어카 끄는 노인을 봤다. 파지값이 떨어져 줍는 사람이 줄었다고 한다. 복지가 좋아졌다지만, 노인 느는 추세에 맞추어 지원하기는 아직 어렵다. 세상 모든 삶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목숨도 빌린 것에 불과해 사용을 다하면 주인인 자연으로 돌려주지 않는가. 하물며 재물이야…. 있든 없든 나의 삶이 빌린 거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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