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 앞바다 해돋이

2023. 5. 13. 05:20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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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을 세 시에 맞추어 두었으나 한 시간 일찍 깨 집을 나섰다. 밤이 멈춘 듯한 심야. 고속도로가 너무 한산하다. 지난달 일출을 보려고 호미곶과 추자도에 갔으나 흐린 날씨였기에 오늘을 기대한다. 해돋이를 보려 함은 염원을 기원하는 소박한 행위다. 즐겁고 긍정적으로 된다.

일출 한 시간 전. 봉길리 해변에 섰다. 칠흑 같은 밤이 바다를 삼켰다. 바다가 울부짖는다. 무인 자동 카페 기계에서 아메리카노를 빼 들고 해변을 걷는다. 파도가 으르릉거리며 하얀 포말을 토한다. 모래밭 여기저기 빨간 불빛들이 깜박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종이컵에 작은 촛불을 세우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밑 빠진 종이컵을 덮어 두었다. 종이컵에 '소원성취' 글자가 보인다. 누군가 촛불에 염원을 담았다.

어렴풋이 문무대왕릉* 윤곽이 검게 보였다. 까마귀 떼가 날아와 촛불 한 곳을 헤집는다. 다른 것들은 건드리지 않아 이상하고 괴이하다. 갈매기가 까마귀에게 쫓겨났는지, 독도로 알을 놓으러 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한 여인이 나타나 모래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기도한다. 바로 앞에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데 미동도 안 한다. 기도는 정성이라더니 그런가 보다.

드디어 수평선에 해님이 나타나셨다. 황홀하진 않지만, 해님은 빛으로 말한다. 온 누리를 밝히듯 내 마음에도 빛을 채워주시리라. 멀어져 가는 해님에게 염원을 빈다. 해돋이 보러온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아 기도발이 끝내줄 것만 같다. (2023.5.12.)


* 문무대왕릉: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56세인 681년 음력 7월에 죽었다. 유언에 따라 불교식으로 화장해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왕의 유해를 산골한 바위를 대왕석(大王石)이라 불렀다. 전설로는 왕은 용이 되었다. 


달님이 중천을 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다.
누군가의 염원의 촛불. 바람에 꺼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정성을 헤치는 괴이한 까마귀 떼들
미동도 안 하고 기도하는 여인
아침을 깨우는 어부
돌아오는 길에 감은사지를 잠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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